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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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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처럼 탄소배출량 검사를 받다?

양쯔강이 말라붙은 뒤 불이 꺼진 청두, 고온지속일·강수량 변화 등 모든 수치가 1961년 이후 ‘사상 최고’ 기록
등록 2022-09-27 15:23 수정 2022-10-07 08:20
양쯔강 지류를 찾은 시민들이 얕은 물에 발을 담가 불볕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양쯔강 지류를 찾은 시민들이 얕은 물에 발을 담가 불볕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8월 초순을 막 넘긴 어느 날 새벽, 악몽이라도 꾼 건지 괴성을 지르다 벌떡 눈을 떴다. 온몸이 땀에 초절임된 상태. 잠들기 전 자동 타이머로 예약해둔 선풍기가 스스로 꺼진 뒤 온몸의 땀구멍에서 땀이 폭포처럼 흐르고 있다. 며칠 전부터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에어컨을 켜달라며 온종일 시위하더니 어느 날 큰아이가 드디어 ‘선언’했다. “이러다 다 죽어!”

베이징에 찾아온 갱년기

2021년까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집에 에어컨을 켠 것은 손에 꼽는데 그조차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잠깐 거실에 몇 번 튼 정도다. 건물 구조상 다른 집보다 서늘한 편이라, 선풍기만 틀어도 그럭저럭 한여름을 너끈히 날 수 있었다. 게다가 체질상 찬 바람을 싫어해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은 질색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난해부터 점점 몸에 이상 징후가 왔다. 온종일 선풍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었고, 일주일에 몇 번씩 집 근처 5성급 호텔 로비에 가서 할 일 없이 공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죽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베이징의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고온 현상이라기보다, 내 몸이 갱년기로 온도 조절 능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친 듯이’ 더위를 타는 건 이제 겨우 15~16년을 살았을 뿐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갱년기는 내가 아니라 베이징에, 그리고 이 지구에 찾아왔다.

2022년 여름은 어째 시작부터 조짐이 불길했다.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인 5월5일께부터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더니 5월 중순에는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5월27일 낮 최고 기온은 34.9도를 찍었고 다음날부터 35도를 훌쩍 넘어갔다. 기상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베이징의 첫 고온 날씨는 예년보다 13일 더 먼저 왔다. 평균 6월10일 무렵에 첫 고온 예보가 나갔는데 올해는 5월28일 첫 고온 예보가 나왔다. 21세기 들어 베이징에 첫 이상 고온이 찾아온 날은 41.1도를 기록했던 2014년 5월29일이다.

20여 년 전인 2000년 말, 베이징에 정착할 때는 이렇게까지 무덥지 않았다. 봄에 몽골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 바람이 고역이었지만 베이징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고 여름에도 그리 고온다습하지 않은 날씨였다. 이곳 사람들은 베이징의 여름 기후를 한마디로 ‘간러’(干热·건조한 더위)하다고 묘사했다.

<베이징 이야기>를 쓴 린위탕은 “인도의 숲속에 사는 현자는 총명하고 지혜로운데, 이는 날이 너무 더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원한 곳에 앉아서 명상하고 고뇌하는 일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도시의 기후가 그 도시의 성격과 사람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베이징 기후는 절대 베이징에 나쁜 영향을 주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린위탕이 요 몇 년간 베이징에 살았다면 <베이징 이야기>를 새로 써야 했을 것이다.

2022년 8월28일 전력난으로 불이 꺼진 중국 청두 거리. REUTERS

2022년 8월28일 전력난으로 불이 꺼진 중국 청두 거리. REUTERS

불야성 불이 꺼지다

8월 중순 어느 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야성의 도시 청두 거리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청두는 전세계에서 1년 내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유일한 도시라고 한다. 야간시간대에 공용자전거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도시, 야간 소비 총액이 일인당 하루 평균 소비액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 한여름에도 ‘훠궈’를 종일 먹는 사람들의 도시. 하지만 2022년 이후 그 말은 ‘먼 옛날의 일’이 될 것이다.

8월14일, 쓰촨성 정부는 긴급 통지문을 발표했다. “모든 산업용 전기사용 생산시설은 6일 동안 생산을 중단하고 직원들에게 고온 휴가를 실시하라. 전력 사용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대에는 전력 제한을 실시한다.” 같은 날 청두 시민들도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청두시 전력망 부하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당분간 전략 제한 공급을 하며 모든 정부기관과 기업, 가정 등에서는 에어컨 온도를 26도 이상으로 통제하라.” 코로나19로 인한 주기적인 봉쇄가 풀리면서 다시 야간경제가 활성화되나 싶었는데 뜻하지 않은 정전 사태로 상인들은 울상이 됐다. 청두를 비롯해 쓰촨성 일대는 전력의 80% 가까이를 수력발전에 의지하는데 2022년에는 ‘역대급’으로 가문 탓에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한 도시 충칭도 ‘중국의 3대 화로’라 할 정도로 무덥기로 유명한 도시지만, 2022년 7월 이후 40도 넘는 날씨가 계속되고 8월 중순에는 45도를 넘어가는 극단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급기야 8월17일부터 대규모 산불이 나면서 도시 주변이 화염에 휩싸였다.

중국 기상국 발표에 따르면 1961년 현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양쯔강 하류 지역은 7월부터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9월5일 쓰촨 루딩 지역에서는 6.8도 강도의 지진이 일어나 100명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 여름내 쓰촨 지역 일대는 ‘지옥의 묵시록’을 써내려갔다. 8월3일 중국 기상국이 발표한 <중국 기후변화 백서>를 보면, 2021년까지 고온지속일과 강수량 변화 등 중국 내 모든 기상변화 수치가 1961년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내용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2022년에 나타난 극단적인 기후변화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보고서다.

양쯔강이 측정 역사상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수력발전 전력 공급이 불가능해서 일어났다. REUTERS

양쯔강이 측정 역사상 최저 수위를 기록하면서 수력발전 전력 공급이 불가능해서 일어났다. REUTERS

하늘의 뜻에 달린 물·바람·태양 에너지

2021년 4월22일 ‘지구의 날’에 맞춰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몇 년간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전세계에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인류는 전례 없는 환경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가 함께 ‘인간과 자연의 생명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지의 ‘멋진 연설’을 했다. 이에 앞서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중국은 2030년을 기점으로 탄소배출이 정점을 찍으면서 감소세로 전환시킬 것이며, 2060년까지 탄소중립(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그것을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개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이 나온 뒤 중국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도 석탄 같은 오염 산업의 규제 등 각종 대책을 발 빠르게 세워나가고 있다.

각 지방 고위 관료와 간부들의 업무·승진 성적에 탄소배출량 감소와 환경오염 산업 감소 등 이른바 ‘녹색발전’ 지표가 반영됐다. 더군다나 2019년 기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가 중국에서 나오고 그 양이 선진국들의 배출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중국 정부는 ‘오염 대국’ 이미지를 벗기 위해 필사적으로 탄소배출 감소에 매진하고 있다.

2021년부터 상하이에 ‘환경에너지 거래소’를 만들어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제도를 운영하고, 환경오염과 탄소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화력발전 대신 친환경 발전 방식인 수력·풍력·태양광 발전 방식에 따른 전력 공급을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2022년 중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극단적인 기후변화 양상은 이러한 친환경적 녹색발전 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를 던진다.

대표적 사례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각종 에너지 위기를 맞자 원전 폐지 등 친환경 정책을 밀고 나가던 독일이 다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것을 보라. 중국도 비슷한 논리로 ‘기후의 역설’ 또는 ‘기후의 함정’에 빠져 있다. 2022년 쓰촨 지역 일대의 대규모 정전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연과 기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물과 바람, 태양 등은 효과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과 바람, 태양 등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 2022년처럼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매년 반복되면 중국 역시 획기적인 대체에너지 공급원이 없는 한 전통적인 화력발전을 다시 강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다시 화력발전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말한 ‘인간과 자연의 생명 공동체’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까마득히 먼 미래의 ‘멋진 신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같다.

3년간 탄소배출량 20% 감소

‘에어컨 혁명’을 일으킨 뒤 온종일 에어컨이 켜진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과 ‘미래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딸아이는 몇 년 뒤 가까운 미래에 기후변화 영향이 가장 적은 지역과 도시로 이주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기후변화를 분석해서 기후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살 만한 도시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살길’이라고 했다.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둘째 녀석은 그냥 방구석에 콕 처박혀 숨만 쉬는 게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할 일이라고 했다.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3년 동안 인류의 활동이 강제로나마 조금 멈춘 뒤 탄소배출량이 20% 이상 줄었다고 하지 않는가.

중국 에스에프(SF) 소설가 하오징팡이 쓴 단편소설 <접는 도시>(北京折叠)는 과다 인구 밀집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징을 큐브처럼 ‘접히는 도시’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3개의 각기 다른 공간으로 접히게 만든 도시에서 각자의 계급과 신분에 따라 상이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24시간을 주기로 다른 시간대를 점유하며 접혔다 펼쳐졌다 하는 삶을 살아간다. 돈과 권력이 높은 계급은 24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1공간에서 살고, 가장 가난한 계급인 3공간 사람들은 하루 8시간만 펼쳐진 공간에서 살고 나머지 시간은 수면가스가 채워진 침대에 누워 접힌 채 잠들어야 한다.

미래의 베이징도 이와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48시간, 72시간마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처럼, 미래에는 주기적으로 개인 탄소배출량 검사를 받고 기준치를 넘어서는 사람들은 강제로 격리되거나 일정 시간을 ‘접힌 공간’에서 수면 상태로 지내는 미래의 베이징. 봄이 거의 사라졌던 2022년 베이징에 가을은 과연 오는 것일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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