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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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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 바다에 그 흔한 우뭇가사리도 없다

제주 월정 해녀들은 왜 하수처리장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나
등록 2022-06-14 12:23 수정 2022-06-15 01:37
2022년 6월2일 동부하수처리장 증설공사를 막으려 24시간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는 제주 월정리 해녀들.

2022년 6월2일 동부하수처리장 증설공사를 막으려 24시간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는 제주 월정리 해녀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아침엔 더 심했어.” 김영숙(70) 제주 구좌읍 월정리 해녀 회장이 말했다. 2022년 6월2일 찾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인근에선 악취가 코를 찔렀다. 관광객이 맨발로 해변을 걷거나 서핑을 하는 월정리 해변에서 불과 1.1㎞ 떨어진 곳에 하루 1만t 이상의 하수를 처리하는 시설이 있다. 하수처리시설 아래쪽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용천동굴이 있다.

“거짓말, 거짓말, 전부 눈만 속이려고 그냥…”

하수처리장치가 가동되는 매일 아침 7시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그 시간쯤에 집집이 창문을 꼭꼭 닫아건다. 낮에도 바람을 타고 악취가 파고든다. 밭일 도중에 새참을 먹으려다가도 냄새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일이 많다고 했다. 김창현 월정리 이장은 “지금도 관광객이 종종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불평하는데, 도에서 이걸 2배로 늘린다고 한다”며 관광객이 아무도 마을을 찾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이날도 월정리 해녀들은 동부하수처리장 뒤편 컨테이너를 지켰다. 지난 8개월 동안 해녀 50여 명이 서너 명씩 한 조를 이뤄, 밤낮으로 24시간 보초를 선다. 처음엔 집에서 이불만 가져와 덮고 자다가,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굵은 쇠사슬로 찻길을 봉쇄했다. 월정리 주민들은 2021년 10월부터 하수처리시설 증설공사를 반대하며 공사 차량 진출입을 막고 있다. 2017년 제주도는 하루 하수처리량을 1만2천t에서 2만4천t으로 갑절 늘리는 공사를 추진하겠다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주민 가운데서도 해녀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앞장선 이유는 월정리 바다가 죽어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70년 넘게 물질(바닷속에서 손으로 해산물을 따는 일)했다.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바다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안다. 성게를 따려고 호미로 돌을 찍어보면, 예전에 딱딱했던 돌이 지금은 다 삭아서 힘없이 떨어져 나간다. 처음에 제주도에서 ‘집집마다 분뇨 직접 처리하기 힘드니 하수처리장을 지어 편하게 처리하자’고 해서 마을에서 동의해줬다. 저걸 짓고 처음엔 괜찮았는데, 10여 년 지나면서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바다에 생물들이 죽었다.” 14살 때 물질을 시작해 28살에 결혼해 월정리로 온 현복래(85) ‘삼춘’(이웃어른을 부르는 제주말)이 말했다.

월정리 하수처리장은 1997년 착공해 2007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처음엔 하루 처리량 6천t 규모였다. 2014년 1만2천t으로 증설한 뒤 불과 3년 만에 다시 시설용량을 늘린다고 하자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주민들은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하수가 바다 쪽으로 계속 유입되면서 어획량이 줄었다고 반발했지만, 도청 쪽은 어획량 감소는 지구온난화 영향이 크다고 해명했다.

“거짓말, 거짓말, 전부 거짓말. 눈만 속이려고 그냥….” 박영순(73) 삼춘이 혼잣말했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태어나 월정리로 시집온 박 삼춘은 물질 경력이 50년 넘는다. “2014년 (하수처리장) 증설 전엔 한번 물에 들어가면 성게 3~5㎏ 정도는 땄다. 지금은 1㎏ 정도 딸까? 식구들하고 먹을 정도도 안 된다. 오분자기는 3~4㎏ 땄는데, 구경도 못한다. 소라는 아예 없다. 옆마을에선 지금 다들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데, 우리는 그 흔한 우뭇가사리도 없다. 10년 전엔 1천 포대씩 나왔는데 올해는 아예 없다.” 그는 “(도청이) 증설하면 바다가 깨끗해진다고 하는 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날 동부하수처리장(뒤편에 보이는 청기와 건물) 앞바다에서 연인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같은 날 동부하수처리장(뒤편에 보이는 청기와 건물) 앞바다에서 연인들이 카약을 타고 있다.

인구는 안 느는데 10년 만에 처리 규모 4배

제주에는 총 8곳에 하수처리장이 있다. 월정리 하수처리장 규모를 10년 만에 4배로 늘리려는 것은 이곳이 관할하는 구좌읍·조천읍 등의 주민 때문이 아니다. 10년간(2011~2021년) 구좌읍·조천읍의 인구는 불과 6160명(3만5820명→4만1980명) 늘었을 뿐이다(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018년 원희룡 제주도지사(현재 국토교통부 장관)는 “주민 동의 없는 증설은 없다”고 약속했다. 도청 쪽은 ‘다른 지역 하수나 침출수는 들여오지 않겠다’고도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그 뒤로도 도청과 주민들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안우진 제주도 상하수도본부장은 “우리도 증설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깨끗한 물이 바다에 유입되도록 하려면 최소한 10~13시간은 하수가 처리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처리량이 너무 많아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다. 월정리 하수처리장의 가동률은 평소에도 70~80%가 넘고 비가 오면 120%로 넘쳐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월정 앞바다는 하수처리장 처리용량이 부족해 오염됐다”며 “(바다로 하수를 흘려보내는) 관로를 전부 다 뜯어고쳐야 해서 지금 와서 새로운 곳을 선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2022년 5월26일, 도청은 공사 차량 진입을 시도했다. 주민들이 이를 막자 ‘시공회사의 공사업무 방해,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공무집행 방해 등 민형사상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월정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해녀인 김은아(48)씨는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공동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매일 바다에 담수가 1만t 넘게 흘러드는데 좋을 수 있겠냐. 심지어 2014년 증설 땐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공사 작업을 했다. 지난 5년간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월정리 반대 때문에 제주도 하수가 넘친다고 하고, 소송으로까지 으름장을 놓냐.” 김 공동대책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주민들은 바다 오염뿐 아니라 용천동굴 훼손 우려도 ‘증설공사 반대’의 이유로 든다. 용천동굴은 조천읍 거문오름부터 월정리 해변까지 13㎞가량 뻗어 있는 용암동굴 무리를 말한다. 월정리에는 두 동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당처물동굴(1994년 발견)과 용천동굴(2005년 발견)이다. 제주도는 두 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동굴 바로 위쪽 ‘핵심구역’에서의 농경을 10여 년 전부터 금지했다. 2021년 10월부터는 동굴 주변 500m 이내 ‘보전구역’에서도 농경을 금지했다. 이에 월정리 마을 농경지 곳곳에는 ‘무단 경작 금지’ 푯말이 박혔다. 이를 어기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용천동굴, 하수처리장 누락해서 유네스코 등재?

김창현 이장은 “월정리 전체 300여 가구 중 50가구 이상이 땅 주인인 제주도에 임차료를 내고 농사지어왔다. 불모지를 일구고 돌을 쌓아올려 밭을 만든 월정리 사람들에게 갑자기 ‘농경 금지’를 통보한 건, 하수처리장 증설에 반대하니까 ‘맛 좀 봐라’는 식으로 행정 보복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경은 금지하면서) 용천동굴에서 115m 떨어진 곳에서 6~7m 깊이의 터파기공사 등이 포함된 하수처리장 증설공사를 하겠다는 건 상충된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서면답변서를 통해 “하수처리장 영향보다는 주변 농경활동에 따른 비료가 용천동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방류수는 (용천동굴로부터) 1340m 떨어진 거리에서 배출돼 보존지역(500m) 밖이므로 용천동굴 내 유입수와 직접 관련은 없다”고 밝혔다.

월정리 주민들은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과정에서 하수처리장이 있는 용천동굴 하류 구간이 빠진 사실을 2022년 4월 확인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문화재청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2007년 등재 당시 하수처리장 공사 중이었는데 하수처리장 존재로 등재가 안 될까봐 고의로 누락한 게 아니냐고 주민들은 의심한다.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을 보면,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할 때 “현재의 보존 상태에서의 위협과 최근 또는 향후 있을 보수공사의 규모, 소요시간, 건물 등”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2014년 증설공사에 대해 유네스코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담당자는 “당시 하류 구간에 대한 조사가 정확히 이뤄지지 않아서 누락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치른 6·1 지방선거에서도 이것이 논란이 되어, 각 당의 도지사 후보들이 ‘누락 구간의 추가 등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놨다.

안재홍 제주녹색당 정책위원장은 “월정리 하수처리장 문제의 근본 원인은 관광객 급증이다. 2021년 1200만 명이 제주를 방문했다. 지금 제주는 자연을 보존할지, 더 많은 관광객을 받는 데 치중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제주 바다가 회복 불능 상태라는 진단도 나온다. 필리핀 보라카이처럼 하수 문제 때문에 6개월간 관광객을 안 받는다는 선택은 못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항공편을 제한하는 등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바다가 다 죽은 뒤에 누가 제주를 찾겠는가.” 안 정책위원장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러다가 결국…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이날 오후,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김은아 공동대책위원장과 함께 월정리 앞바다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에메랄드빛 얕은 바다 위로 연인들이 투명한 카약을 타고 놀았다. 분홍색 메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검은 현무암 아래로 하수를 처리한 담수가 배출되는 관로가 설치돼 있다. “(바다 상태가) 괜찮아 보이죠? 관로를 바다 멀리 빼놔서 문제없다고 하는데,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서 보면 전에 없던 끈적끈적한 오물이 관로 주변은 물론 바다 곳곳에 쌓여 있어요. 이러다가 결국…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제주=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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