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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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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투기범 270명 잡은 시민

“건설폐기물 신고 1t 까지 확대해야”
‘쓰레기산’ 쫓는 서봉태씨 인터뷰
등록 2021-08-07 23:18 수정 2021-08-11 10:49
2021년 7월17일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서 불법투기 폐기물로 가득 찬 공장을 찾은 서봉태씨. 박승화 기자

2021년 7월17일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서 불법투기 폐기물로 가득 찬 공장을 찾은 서봉태씨. 박승화 기자

경북 영천 대창면에 있는 약 1500평(약 4958㎡)의 공장부지. 이 중 550평의 공장 건물 옆쪽과 앞쪽 벽체가 무너져 있다. 7천t에 이르는 불법 투기 폐기물이 공장 건물 안을 가득 메우면서 건물이 파손된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니 9m 높이의 천장까지 폐기물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재건축 현장에서 나온 건설폐기물부터 석면가루를 포집한 폐기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공장

여기는 평범한 사업가인 서봉태(52)씨를 전국 곳곳에서 불법 폐기물 투기범을 쫓는 환경운동가로 만든 현장이다. 서씨는 본인 소유의 땅이던 이 공장부지를 2015년 ㄱ씨에게 팔았다. 이후 ㄱ씨는 자동차부품 제조공장을 지어 직원들과 열심히 회사를 성장시켰고, 양산으로 확장 이전하게 됐다. 공장부지 매각 절차 과정에서 단기간 임대 문의가 들어왔다. 시세보다 비싸게 월세를 낸다고 하는데다 비철과 구리 등 고가품을 보관할 용도로 임대한다는 말을 믿고, ㄱ씨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단기간 임대된 공장부지에 높은 담장이 쌓아지기 시작했다. 근처를 오가며 이를 수상하게 본 서씨가 2019년 5월20일, 공장 건물 벽체가 무너진 것을 발견하고 공장 문을 열어봤다. 불법 폐기물 ‘쓰레기산’이 나타났다. 투기범들이 거짓으로 공장을 임대해 불법으로 폐기물을 버린 뒤 도주한 현장이었다. 폐기물을 더 높게 쌓기 위해 천장에 달려 있던 전등 전선까지 다 뜯었고, 화장실 공간도 모두 무너뜨린 상태였다.

서씨는 먼저 ㄱ씨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인력을 동원해 압축된 폐기물을 일일이 분석했다. 광주, 대구 등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폐기물이었다. 버려진 광고물이나 현수막에 적힌 정보를 수집한 뒤 제조업체에 연락해 배출업체와 폐기물 위탁업체 등을 알아내고, 포항까지 가서 투기범을 잡아냈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면서 서씨는 모든 게 해결됐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투기범 처벌이 너무 약하더라고요. 불법 투기를 기획하고 시행한 투기범이 고작 1년6개월형을 받았어요.” 폐기물관리법 제63조에 따르면, 불법으로 사업장폐기물을 버리거나 매립·소각 또는 승인 없이 재활용한 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7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불법 투기에 대한 죄만 적용받고 사기죄는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곧 출소인데 그 투기범이 2018년 성주에 불법 투기한 걸 최근 잡아내서 추가 고소했으니 형은 다시 집행될 겁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투기범에게 공장을 단기 임대해준 ㄱ씨가 큰 재산 피해를 보게 됐다. 폐기물관리법 제48조에 따르면 부적정 처리 폐기물에 대해 환경부 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폐기물 처리 등 조치를 명할 수 있는데, 조치명령 대상자에는 ‘폐기물을 발생시킨 자’ 외에 ‘폐기물이 버려지거나 매립된 토지 소유자’도 포함돼 있다. 투기범이 돈이 없다고 하면, 수십억원에 이르는 불법 폐기물 처리 비용을 토지 소유자가 내야 하는 상황이다.

야밤 추적, 주말 반납 그리고 잠복

ㄱ씨는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잃었고, 확장 이전해 가동 중이던 공장 생산라인을 모두 중고로 팔아야 했다. 서씨가 불법 투기 현장을 발견하고 신고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폐기물은 여전히 그곳에 쌓여 있다.

영천 대창면에서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신녕면의 한 작은 마을. 여기 산 중턱에 불법 폐기물이 쌓여 있다. 6천 평 넘는 땅에 4m 높이로 쌓은 불법 폐기물은 최소 8천t에 달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해안 지역 사업장에서 나온 폐어망을 비롯해 온갖 폐기물이 뒤엉켜 있었다. 여기도 서씨가 발견해 투기범을 고발했다.

불법 폐기물 투기 현장을 처음 발견한 뒤 전국 투기범들을 쫓아다니기 전까지 서씨는 한 달에 두어 번 강가 쓰레기 줍는 봉사를 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쓰레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였지만, 불법 폐기물 투기 현장을 다녀보니 끝도 없이 정보가 쏟아졌다. 투기범이 움직이는 야밤에 행적을 쫓기 위해,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도 모두 반납하고 추적했다. 인력을 동원할 일이 많아 1년에 1억원 가까운 돈을 자비로 충당했다. 2021년 7월16일에는 경기도, 호남 지역 조직과 연계된 국내 최대 투기 조직을 경찰과 잠복 끝에 충북 진천에서 검거했다. 이렇게 서씨가 잡아낸 투기범만 지금까지 270명이 넘는다.

“투기 조직은 총책임자인 지휘자, 영업 담당자(브로커), 운반자, 투기장 임대 등을 맡는 현장 관리자(속칭 ‘바지사장’), 현장 작업자(포클레인 기사) 등으로 구성됐어요. 덜미가 잡혔을 때 각자 어떻게 진술할지도 이야기를 다 맞춰놔요. 차명계좌를 만들어 불법으로 번 돈 모두 빼돌리고요. 다들 추적이 어려운 렌터카로 다니면서 전국적으로 모임도 엽니다.”

서씨 사무실 책상에는 지금까지 그가 모은 투기범들의 정보와 재판기록 등 자료가 가득 쌓여 있다. 투기범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번호 사진, 투기범 조직이 자주 가는 식당 목록, 현장 관리자나 작업자에게서 직접 받은 금융거래내역서 등 2년 넘게 그가 얼마나 현장을 다녔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서씨는 “이젠 현장을 찾지 않아도 전국에서 폐기물 운송차량 기사들의 제보로 지금 어디서 불법 폐기물이 버려지는지, 언제 어디서 폐기물 투기가 일어날 예정인지 정보를 다 듣고 있다”고 말했다.

1년10개월 사이 불법 폐기물 41.3만t

그 결과, 경북의 큰 불법 폐기물 투기 조직은 거의 구속된 상태라고 한다. 무엇보다 경북 지역은 관련 공무원 네트워크가 생겨서 불법 투기범들의 행적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다. 경북은 폐기물 처리 시설이 많기도 하고, 폐기물이 많이 발생하는 경기도와 호남 사이에 있어 ‘중간 기착지’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2월 전국 불법 폐기물 전수조사에서 불법 폐기물 총 120.3만t을 발견했다. 그중 114.3만t을 2020년 12월까지 처리해 6만t이 남았다. 하지만 2019년 3월~2020년 12월 41.3만t이 추가 발생했다. 추가 발생 지역을 보면 경북(15.69만t)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경기(7.96만t), 충남(5.2만t), 전남(4.1만t) 순이다.

서씨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불법 폐기물 투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신고 대상 폐기물을 배출, 수집·운반, 재활용 또는 처분하려면 단계별로 폐기물 인계·인수 내용을 ‘올바로시스템’(www.allbaro.or.kr)에 입력하게 돼 있다. 건설폐기물의 경우 5t 이상부터 신고한다. 이렇다보니 5t 미만 무허가 차량을 이용해 불법 투기가 성행한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그는 “1t 차량부터 무조건 신고하는 방안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무원 담당 인력이 부족한 문제도 크다. 영천시의 경우 폐기물 처리 시설은 약 180개이고 행정 담당 인력이 꾸준히 늘어 5명이 됐지만, 다른 시·군·구는 여전히 담당 인력이 2~3명 정도에 그친다. 예를 들어 성주군에선 폐기물 처리 시설이 200여 개나 되지만 관리 담당 직원은 3명뿐이다. 현장에서는 올바로시스템 전담 관리, 사업장 지도 단속, 민원 해결 등 전담 인력이 최소 4~5명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장 감시 인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환경공단은 2021년 6월, 지능화하는 폐기물 불법 투기 행위 근절과 예방을 위해 전국 10개 지역에 총 130명으로 구성된 ‘명예 순찰 감시단’을 출범했다. 서씨는 “감시 인력이 늘어 더 촘촘한 감시체계가 구축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남훈 안양대 교수(환경에너지공학)는 “불법 폐기물은 매립, 투기, 방치 등 여러 방법으로 버려져서 침출수가 발생할 경우 지하수와 하천 수질 오염, 공기·토양 오염을 발생시키며 병충해, 악취 등으로 주민들 건강도 크게 위협한다”며 “불법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사업장폐기물 처리시설 확충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명확화, 직매립 금지, 재활용 우선 정책으로 매립 대상 폐기물량 감소 등 제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2년 불법 투기 어려워질 것”

서씨는 처음 자신이 발견한 현장에 까마득히 쌓여 있는 불법 폐기물을 바라보면서도 희망을 말했다. “2022년부터는 폐기물 투기가 어려워질 겁니다. 환경부 지원, 사설 경비업체 협업으로 불법 폐기물 투기를 원천 봉쇄하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폐기물 불법 투기 완전 근절’이라는 우리 사회의 목표가 한 시민의 노력으로 성큼 다가왔다.

채혜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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