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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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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대형 슈퍼마켓에서 나서서 친환경

친환경, 지속가능성,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2025년 목표로 각 주에서
‘플라스틱 아웃’ 도입
등록 2021-08-05 23:47 수정 2021-08-06 07:55
섬유유연제 용기를 가져가면 리필을 받을 수 있는 콜스의 리필 스테이션.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섬유유연제 용기를 가져가면 리필을 받을 수 있는 콜스의 리필 스테이션.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금까지 국내 쓰레기의 여정을 쫓아왔다. 이제 지구촌으로 눈을 넓혀보자.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인류의 쓰레기 배출량이 연간 20억t이 넘는다. 올림픽 경기 기준 수영장 80만 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34억t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6%에 그친다. 쓰레기 문제에서도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부자 나라가 더 많이 버리고 가난한 나라가 더 큰 위협에 노출된다. 독일·미국·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일본·타이·터키·홍콩 9개국에 더해, 우주폐기물까지 인간의 ‘쓰레기 발자국’ 실태와 그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_편집자주

10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땅을 밟았을 때 먹다 남은 음식,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 종이 상자를 일반 쓰레기통에 한꺼번에 버리는 룸메이트를 보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쓰레기를 버리는 것마저도 얼마나 편한지, 집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에 넣어 문 바로 밖의 슈트(Chute)에 넣으면 끝이다. 한국에서 살며 몸에 밴 분리배출 습관 때문인지 한동안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청정국가’ 이미지에 상반되는 재활용 시스템의 부재가 항상 아쉬웠다.

그러던 중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이 세계 1위라는 기사를 접했다.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특히 어렵다. 오스트레일리아 플라스틱 폐기물의 80% 이상이 매립지에 버려지고 일부는 섬나라 오스트레일리아를 둘러싼 바다로 향한다. 빨대가 코에 들어가 고통받는 바다거북, 봉지에 묶여 날지 못하는 새에 대한 안타까운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년 중국 정부의 재활용 폐기물 수입 금지 조처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폐기물 로드’가 막히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한정된 매립지에 쌓여만 가는 진퇴양난의 모양새가 됐다.

키캣 포장지, 코카콜라 병뚜껑이 재활용 플라스틱

2018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 △재사용 △생분해성으로 만든다는 ‘국가 포장재 계획 2025’(National Packaging Target 2025)를 발표했다. 각 주정부 역시 앞다투어 2025년을 목표로 설정하고 플라스틱 폐기물 절감 정책을 내놓았다. 대도시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선 2022년에는 플라스틱 봉투, 식기류, 빨대의 사용과 판매가 금지될 예정이다. 서오스트레일리아(WA)주에서는 당장 2021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상당수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코로나19로 일회용 제품 사용이 공공연해진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파격적인 행보다. 이 지역에서는 배달·포장할 때는 생분해성 용기나 나무수저 등을 사용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내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울워스와 콜스도 2025년을 목표로 ‘플라스틱 아웃’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확실히 언제부터인가 마트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류, 빨대, 면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백이나 종이 쇼핑백만을 사용하고 사탕수수 펄프로 만든 봉지에 담긴 식빵을 먹는 게 일상이 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코카콜라 병뚜껑과 네슬레의 키캣 초콜릿 포장지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또한 이제는 대단하지 않은 사실이다. 울워스와 콜스의 일부 매장에선 특정 브랜드의 섬유유연제, 바디워시 용기를 가져가면 리필을 받을 수 있다. 브랜드에 따라 절반 이상 할인도 해준다. 매장마다 비치된 비닐봉지 전용 수거함과 여기로 모인 것이 업사이클되어 재탄생한 벤치는 매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 각 주정부, 무엇보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슈퍼마켓 체인이 이렇게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데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기본적으로 친환경 소비와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다는 전제가 깔렸다.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택배업체 쿠리어스플리즈(CouriersPlease)에서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값을 조금 더 치르더라도’ 지속가능한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2025년은 출발점이 될까 목표점이 될까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점차 개선된다는 점도 체감하고 있다.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 왔던 10년 전과 견줘보면 재활용 인식이 퍼져 플라스틱·종이류를 분리배출하는 게 일상화됐다. 2021년 초 우리 사무실에도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다만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 1위 석탄 수출국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플라스틱 폐기물 절감 노력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2019년 9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오스트레일리아 국토의 1800만 헥타르를 불태운 산불 사태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상고온 현상과 가뭄으로 발생한 산불로 한국 국토의 두 배에 이르는 면적이 소실되고 나서야,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그린에너지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온실가스의 주범인 음식물쓰레기를 어느 이름 모를 비닐봉지에 일반 쓰레기와 뒤죽박죽 담아 버렸다는 점을 되짚어보면 이제는 일상의 ‘자발적’인 쓰레기 절감 노력에 어느 정도 ‘규제’가 더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플라스틱 아웃’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2025년이 성취의 한 해가 될지 아니면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시드니=황슬아 KOTRA 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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