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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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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당분간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국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할 경우 비용 절감된다는 기업 반발에
두 달 만에 시행령 번복
등록 2021-08-05 14:41 수정 2021-08-05 22:55
터키 정부가 환경 보전을 이유로 에틸렌 폴리머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직후인 2021년 5월20일, 이스탄불 알리베이쾨이댐 근처 도로변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모습. REUTERS

터키 정부가 환경 보전을 이유로 에틸렌 폴리머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직후인 2021년 5월20일, 이스탄불 알리베이쾨이댐 근처 도로변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모습. REUTERS

지금까지 국내 쓰레기의 여정을 쫓아왔다. 이제 지구촌으로 눈을 넓혀보자.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인류의 쓰레기 배출량이 연간 20억t이 넘는다. 올림픽 경기 기준 수영장 80만 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34억t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6%에 그친다. 쓰레기 문제에서도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부자 나라가 더 많이 버리고 가난한 나라가 더 큰 위협에 노출된다. 독일·미국·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일본·타이·터키·홍콩 9개국에 더해, 우주폐기물까지 인간의 ‘쓰레기 발자국’ 실태와 그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_편집자주

터키 생활 15년. 경제, 물질 풍요, 민주적 태도 등 여러 면에서 발전이 두드러지지만,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1990년대 초반에 그친다. 쓰레기종량제는 없고, 2019년 1월부터 매장과 마트에서 비닐봉지 유료화만 시행하고 있다. 고형폐기물 분리수거에 대한 인식도 걸음마 단계다. 터키 환경부에 따르면, 터키의 고형폐기물은 연간 3200만t 배출되는데 그중 15~20%만 재활용된다.

여전히 쓰레기를 비닐에 싸서 한꺼번에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해당하는 ‘SIFIR ATIK(스프르 아트크) 프로젝트’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인 에미네의 후원으로 2017년 10월에 출범했다. 1991년 설립된 환경 보호·포장 폐기물 평가 재단 ‘CEVKO’(제브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일한다. 공원, 학교, 아파트 단지마다 분리수거함을 설치해 재활용 인식을 확대하는 게 대표적이다.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환경보호와 분리배출 교육도 한다. 최근 들어 가정용 쓰레기와 고형폐기물을 분리하고, 재활용 분리수거함도 컴퓨터·전자제품 수거함과 오일 수거함을 별도로 만들었으나, 분리배출에 대한 인식 변화는 더디다. 여전히 여러 쓰레기를 비닐에 싸서 한꺼번에 넣어버리는 일이 흔하다.

일반 가정에서 재활용 분리배출을 보면, 새 아파트 단지에서나 분리배출을 권장할 뿐이다. 일반주택 지역은 재활용 분리수거함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에게 집에서 분리배출을 하는지 물었더니, 대부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 근처에 분리수거함이 없고 재활용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주요인이다. 음식물쓰레기도 따로 배출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폐기물 재활용 교육이 강화됐지만 성인을 위한 교육은 제도적으로도 부족해 보인다.

참신한 시도도 있었다. 2018년 이스탄불시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 ‘스마트 모바일 트랜스퍼 스테이션스’(Smart Mobile Transfer Stations)라는 재활용 수거 적립 기계를 설치했다. 페트병, 캔 등을 기계에 넣으면 교통카드에 페트병 크기에 따른 소량의 금액을 적립해주는 것이다. 비록 파일럿(시험) 형식으로 진행되고, 아직 지하철 환승역마다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재활용 교육 방안을 탐색하고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바샥셰히르구의 공원 입구에 재활용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노은주 제공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바샥셰히르구의 공원 입구에 재활용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노은주 제공

플라스틱 수입 때마다 인센티브 제공

터키는 영국과 유럽연합(EU) 국가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입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터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4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본격화했고 2017년 이후 수입 규모가 급증해 2020년에는 65만9960t, 7230만달러에 이른다. 수입이 급등한 요인으로는 중국, 다른 국가의 수입 규제와 함께 터키에서 폐기물 재활용 시설 설립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또한 터키 정부는 경제성장과 고용 확대를 명목으로 재활용 시설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입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이 급증했다. 터키 언론은 국내 플라스틱 분리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수입하는 편이 비용 절감되므로 수입이 증가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2021년 5월18일 정부는 환경 보전을 이유로 에틸렌 폴리머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시행령을 내놓았다. 터키의 플라스틱산업재단(PAGEV) 회장 야부즈 에로글루는 수입한 플라스틱 폐기물로 원료를 생산하면 오리지널 원료를 써서 생산할 때보다 3분의 1 가까이 비용이 절감된다고 주장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 결정으로 생산비가 올라 플라스틱 제품 가격 상승, 터키의 경제 불황, 인플레이션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탄불 상공회의소 회장인 세크프 아브다그지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정부의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금지 결정을 비판하며, 산업 분야를 위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업체 반발 때문일까, 터키 정부는 두 달 만인 7월16일 시행령을 번복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지속하기로 했다. 터키의 최대 명절(쿠르반 바이람 연휴)이 시작되기 전날, 시행령이 발표돼 언론은 잠잠했지만 환경보호단체에서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남녀노소 위한 재활용 교육을

아무튼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 허용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에서 환경보호뿐만 아니라 기업의 플라스틱 생산 비용 상승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정부는 고려할 수밖에 없다. 시소의 균형을 맞추듯이 환경보호와 산업·경제 발전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앞으로 재활용 분리배출 제도를 발전시키고 재활용 교육을 폭넓게 펼쳐, 남녀노소 누구나 환경보호에 관심 갖도록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보전해야 할 의무는 우리에게 있으니 말이다.

이스탄불=노은주 TAOR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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