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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엄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식사 뒤 음식·식기를 한꺼번에 버리자 아들의 반응, 여전히 재활용은
의무 아닌 자발적 참여
등록 2021-08-05 23:16 수정 2021-08-06 07:54
2008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의 한 폐기물 재활용 센터에 폐지가 쌓여 있다. REUTERS

2008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의 한 폐기물 재활용 센터에 폐지가 쌓여 있다. REUTERS

지금까지 국내 쓰레기의 여정을 쫓아왔다. 이제 지구촌으로 눈을 넓혀보자.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인류의 쓰레기 배출량이 연간 20억t이 넘는다. 올림픽 경기 기준 수영장 80만 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34억t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6%에 그친다. 쓰레기 문제에서도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부자 나라가 더 많이 버리고 가난한 나라가 더 큰 위협에 노출된다. 독일·미국·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일본·타이·터키·홍콩 9개국에 더해, 우주폐기물까지 인간의 ‘쓰레기 발자국’ 실태와 그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_편집자주

“앞으로 유리병을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지 마세요!” 2019년 9월, 미국에 도착해 시차도 채 적응되기 전에 받은 공문 중 하나다. 내가 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를 포함한 미국의 다수 지역)는 유리병을 일반 쓰레기로 수거한다. 그전에는 버려진 유리병을 모아 중국으로 수출했는데,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분쇄기로 음식물쓰레기 갈아서 일반 쓰레기로

멀쩡한 유리병을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게 양심에 꺼려진다면 특정 장소에 설치된 유리병 회수 쓰레기통(Purple Can)에 버려야 한다. 문제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퍼플 캔’이 자동차로 12분 거리에 있다는 거다. 유리병 분리배출을 위해 차로 10여 분 가야 한다면 어느 쪽이 환경에 덜 해로운 선택인가?

이외에 경악할 만한 쓰레기 처리 방식이 수두룩하다. 미국은 학교 급식에 일회용 식기를 사용한다. 학생들은 식사를 마친 뒤 식기를 남은 음식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다. 중학교 1학년(7학년) 아이는 한국에서 또래의 보통 남자아이들처럼 환경문제에 둔감한 편이었다. 이런 아이도 종이, 플라스틱, 비닐, 음식물이 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엄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미국에선 음식물쓰레기를 따로 모아 버린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대부분 가정이 싱크대에 설치된 분쇄기로 음식물쓰레기를 갈아서 버린다. 재활용 쓰레기도 종이, 플라스틱, 비닐, 유리, 고철 등 종류별로 따로 분리해 배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재활용 분리배출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의무 규정이 아니다. 한국처럼 쓰레기종량제를 시행해 쓰레기 총량을 줄이도록 유도하지도 않는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 사태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식당 매장 이용이 크게 제한받으면서 배달 음식 이용이 급증했다. 2020년 12월 기준, 음식 배달업의 매출이 전년보다 138% 급증했다. 해양쓰레기와 관련된 최근 국제연구에 따르면, 전세계 바다를 뒤덮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절반가량이 배달과 포장 등에 쓰이는 일회용 음식 용기였다.

불법 수출입만 막는 ‘바젤협약’

미국은 쓰레기 문제에서 ‘후진국’이다. 1인당 쓰레기 생산량이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인이 1년에 생산한 도시 고형폐기물(MSW) 총량은 2억9240만여t으로, 1인당 하루에 2.2㎏(약 4.9파운드) 이상 배출했다. 영국 컨설팅기업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도시 고형폐기물 생산량은 중국 1인당 생산량의 3배, 에티오피아의 7배에 이르렀다. 또 미국의 도시 고형폐기물 재활용 비율은 35%로 독일(68%)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깡패 국가’다. 자국민이 쓰고 버린 쓰레기의 상당량을 다른 나라로 떠넘긴다. 미국은 2016년 1600만t의 재활용 쓰레기를 중국으로 수출했다. 중국이 2018년 수입 중단을 선언하자 미국에 비상이 걸렸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타이 등 다른 ‘쓰레기 하치장’을 찾거나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일부 주정부는 매립을 선택했다.

‘바젤협약’은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로 유해물질을 떠넘기는 것을 규제한다. 1989년 만들어진 이 협약은 2019년 플라스틱 폐기물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바젤협약은 유해물질의 국제적 이동 자체가 아니라 불법 수출입만 막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그마저도 세계 188개국이 가입한 이 협약을 미국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쓰레기 처리가 엉망진창인 이유는 ‘돈’ 때문이다. 쓰레기 수거와 처리는 주정부나 카운티 정부가 대부분 민간업체에 맡겨 수행한다. 지역마다 재정건전성, 환경보호 정책 등이 천차만별이라 쓰레기 처리 방식도 차이가 크고, 이런 경우엔 대체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환경규제 정책에 반대하는 기업들의 로비도 막강하다. 미국이 바젤협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석유화학기업 등 관련 기업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보다 더 기업의 후원금에 종속돼 있기에 환경정책은 늘 뒷전이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노골적인 ‘반환경주의자’가 권력을 잡으면서 한발 더 후퇴한 측면도 있다. 미국 서부 지역은 매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대규모 산불로 기후변화가 ‘재앙적’ 형태로 나타나는데, 트럼프는 산불이 “낙엽을 치우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우겼다.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과 그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낙엽 치우지 않아 산불 났다는 대통령

물론 미국에도 변화는 있다. 캘리포니아, 미시간, 뉴욕을 비롯한 10개 주는 사용 뒤 다시 가져오는 플라스틱과 유리병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플라스틱 빨대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 달리 기후변화 등 환경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상생활이 변화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자유’(편리)를 제약하는 것이 미국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코로나19 사태로 벌어진 ‘마스크 논쟁’ 때 드러났기 때문이다.

워싱턴=전홍기혜 <프레시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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