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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옛사람들은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살았던걸까
등록 2021-08-03 16:14 수정 2021-08-04 02:17
장독은 음식물을 보관하는 중요한 도구다. 가을에는 땅에 묻어 겨울 양식이 되도록 했다. 장독에 담긴 호박김치. 한겨레 박미향 기자

장독은 음식물을 보관하는 중요한 도구다. 가을에는 땅에 묻어 겨울 양식이 되도록 했다. 장독에 담긴 호박김치. 한겨레 박미향 기자

코로나19로 집콕 하며 배달음식, 많이도 시켜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을 바라볼 때, 이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쓰레기’를 눈앞에서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다버리면서 죄책감도 같이 버린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버리면 그 죄책감은 좀더 가벼워질지 모른다. 버리고 온 쓰레기는 잊히고 끼니때는 또 다가온다.
뒤돌아선 그때, 음식물쓰레기의 여정은 시작된다. 매일 새벽 집 앞을 오가는 누군가의 손에 실려 한데 모인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찢고 털고 부수고 말리고 쪄서 갈색 가루가 돼 먹이로, 퇴비로 쓰인다. 잊어버리려 했던 죄책감을 좇아갔다._편집자주

냉장고 없이 자연 그대로 살던 시절 쓰레기 걱정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었습니다. 봄이면 잠시도 쉬지 않고 많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셨습니다. 산과 들에는 심고 가꾸지 않아도 많은 먹거리가 있었습니다. 먹고 여유가 있을 때 부지런히 말려서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자연은 방대한 슈퍼마켓인 셈이었습니다.

자연은 거대한 슈퍼마켓

철 따라 심는 채소와 곡식은 언제나 새로운 맛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검은 무쇠솥에 불을 때서 밥해야 했습니다. 식구끼리 일할 때는 아침에 밥을 많이 해놓고 일하다 들어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겨울에는 놋양푼에 밥을 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놓고 먹었습니다. 여름에는 보리밥을 해서 아침에 먹고 남은 밥은 커다란 바가지에 담아 삼베 보자기로 덮어 부엌 한쪽 구석에 매달아놓은 광주리에 넣었습니다. 바가지에 밥을 담으면 밥이 쉬지 않았습니다. 불도 때지 않았는데 물을 흡수한 바가지에는 누룽지가 앉아서 긁어 먹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때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달랐습니다. 산골 도랑가에 사는 집들은 물가 얕은 곳에 그릇 크기에 따라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김치 항아리를 담가놓고 먹고 과일은 그릇에 담아서 물에 담가 단물이 빠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강물은 아침 일찍 길어 큰 두멍, 버럭지(버치: 큰 그릇)에 담고 그 속에 음식을 저장해 먹었습니다.

어머니 하면 항아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늘 항아리와 함께였습니다. 장독간에서 장독을 매만지고 가을이면 김장독을 관리했습니다. 가을엔 많은 독을 땅에 묻어 저장했습니다. 가을이면 할머니는 “야야, 김장은 반양식이란다” 하십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가을엔 여러 날에 걸쳐 김장을 많이 했습니다.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은 배추김치부터 한 독 채워넣습니다. 배추를 잘 절여 배추 한 켜 놓고 아버지 두 손으로 잡을 만큼 큰 무를 큼직하게 토막을 툭툭 쳐 배추 위에 올립니다. 이때 소금 간을 잘 맞추는 것이 김치 맛을 좌우합니다.

집 주위 양지바른 곳에 항아리를 많이 묻습니다. 갓김치, 배추김치, 백김치, 석박김치, 깍두기까지 많은 김치를 해서 묻습니다. 눈이 내릴 때까지 김장하다 생긴 것은 다 거둬들여 시래기도 매달아놓고 먹습니다. 김치가 많으니 겨우내 원 없이 만두를 해 먹습니다. 김치찌개, 김치볶음 등 김치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았습니다.

먹고 여유가 있을 때 잘 말린다. 생명을 내는 것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자연이다. 자연은 울트라슈퍼마켓이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먹고 여유가 있을 때 잘 말린다. 생명을 내는 것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자연이다. 자연은 울트라슈퍼마켓이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껍질째 놔두면 벌레가 나지 않는 쌀

봄이면 햇빛 좋은 날을 골라 동치미 무를 물에 헹궈 발에 널어 말립니다. 배추김치도 속을 털어내고 물에 헹궈 빨랫줄에 쭉 널어 꾸들꾸들 마르면 된장독에 넣어 장아찌를 만듭니다. 맛이 잘 든 무장아찌는 국솥에 넣어 끓이다 건져 먹으면 짜지 않고 아주 별미였습니다.

시장에서 생선을 사올 때는 새끼줄로 묶어 들고 왔습니다. 여자들은 함지박 같은 데 담아 이고 다니기도 하고 남자들은 지게 쇠뿔에 달아매 지고 와 먹었습니다. 정육점 고기나 생선은 비료 포장 종이에 싸서 짚으로 묶어 가져와 먹었습니다. 이렇게 포장지가 짚이나 새끼줄, 고작 비료 포장 종이였기에 부엌 아궁이에 태웠습니다.

가을이면 ‘와롱 기계’(낱알을 터는 기계로 와롱와롱 소리가 났다)로 여러 사람이 모여 벼를 털었습니다. ‘탕탕 방아’를 부르면 소형 방아를 여럿이 목도로 메고 벼를 찧으러 다녔습니다. 소형 방아는 탕탕거리며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탕탕 방아라 불렀습니다. 탕탕 방아가 한번 마당에 정착하면 보통 삼사일을 사람들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북적대고, 밥을 먹고, 탕탕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마당이 넓고 벼가 많은 집에서 불러 마당에 설치하면 주위의 벼가 적은 집들도 와서 쌀을 도정해 갔습니다. 쌀은 열두 가마니들이, 열 가마니들이, 여덟 가마니들이 나무 뒤주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그게 아니면 큰독에 담아놓고 먹었습니다. 벼는 껍질째 놔두면 천년이 가도 벌레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는 싸릿가지로 만든 커다란 채독에 보관했습니다. 채독은 틈새에 소똥을 발라 말리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좁쌀도 새지 않았습니다.

나무주걱은 못 쓰게 되면 연료로

투박하고 자연 그대로 살던 시절에는 후일 쓰레기 걱정을 하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엌살림이 질그릇이나 놋그릇, 무쇠솥, 사기그릇이었습니다. 저장하는 큰 그릇은 짚으로 만든 가마니나 짚봉생이, 멍석, 주루먹 같은 것이었습니다. 쌀 저장고로 쓰던 뒤주, 함지, 밥구박, 주걱에 이르기까지 나무로 만들었기에 쓰다가 낡아 못 쓰게 되면 유용한 연료가 됐습니다. 싸릿가지로 만든 큰 채독이나 다래끼, 광주리를 쓰다가 다 낡아서 못 쓰게 되면 발로 빠지작 빠지작 밟아서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쓰고 남은 재는 밭에 거름이 됐습니다.

자연 그대로 살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불편한 줄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나 만들면 구수하고 맛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날 뿐입니다.

전순예 19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내가 사랑한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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