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테니스광이 골프광한테 말했다.
“자네는 죽어 있는 공을 치는 게 재밌나?”
골프광이 답했다.
“죽어 있는 공에 생명을 불어넣는 재미를 자네는 모를걸세.”
그들의 대화에 빗대 야구를 말하자면, 야구는 살아 있는 공에 더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임이다. 공이 움직이기 전부터 선수들이 먼저 꿈틀댄다. 몸을 쓰면서도 머리를 쓰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역동적인 게임이다.
연말에 “올해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우물거렸다. 올해는 다르다. 비슷한 여러 유형의 질문에 대한 답의 끝은 꼭 야구에 가닿는다. 야구를 접하고, 배우고, 알고, 즐겼다. 야구의 세계에서 울고 웃었다. 위로였고, 해독제이면서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었다.
혹한이 닥치고 눈발이 날리자 한겨레신문사 야구단 ‘야구하니’ 선수들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오가다 만나면 “우리 이제 무슨 낙으로 사냐?”거나 “오키나와로 전지훈련 가자”는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가장 현실적인 동계훈련 프로젝트가 진지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겨울훈련을 가기 벅찬 고교 야구팀들은 덜 추운 남쪽 지방의 학교를 빌려 훈련한다. 거기에 쫓아가서 학생 선수들에게 삼겹살을 사주고 그들이 먹는 시간 동안 운동장을 빌려서 훈련을 하자는 비굴한 방안이었다. 와 의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와 PD, 광고와 판매, 인쇄와 발송을 책임지는 사원 등 다양한 직종과 여러 직급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휴가를 쓰는 게 불가능한 만큼, 사실 겨울은 우리에게 ‘동면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자꾸 ‘시즌 아웃’ ‘올해의 마지막 경기’란 말을 남발한다. 얼마 전에 마지막 경기라고 했는데 구장 사정이 괜찮다며 또 “모이자”고 부추긴다. 괜찮기는 개뿔! 서울·경기 지방 체감온도가 영하 20℃였던 지난 12월11일에도 커다란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가면서 ‘야구에 미친 ×들’ 16명이 청백전을 치렀다. 돔구장이 불가능하다면 실내 연습장이라도 많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국격이 높아지고 선진국이 된다.
올해 4월 창단한 야구하니의 공식 성적은 2승15패. 앞뒤가 바뀌었으면 좋았겠지만 바닥부터 시작해 날로 성장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 코너의 한 애독자는 “지면서도 지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꾸준함이 좋다”고 했고, 다른 애독자는 ‘승리 기원’이라고 쓰인 공 한 다스를 보내주기도 했다. 처음 ‘플레이볼’을 쓰던 날이 생각난다. 을 인용하면서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을 들먹였던 것 같다. 앞으로는 즐기면서도 ‘이기는’ 야구를 하고 싶다. 올해 야구하니에 패배를 안겨준 팀들을 차례로 불러 격파하는 ‘무협지’를 쓰고 싶다. 그때까지 안녕.
*‘김보협의 플레이볼’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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