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뒷집 명희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에 파셨어요?” “십칠만 원 받았어요.” “영희네도 어차피 아파트로 못 갈 거 아녜요?” “무슨 돈이 있다구!” “분양아파트는 오십팔만 원이구 임대아파트는 삼십만 원이래요. 거기다 어느 쪽으로 가든 매달 만오천 원씩 내야 된대요.”’
1970년대 낙원구 행복동의 판자촌을 허물고 짓는 새 아파트는 철거민들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난장이, 아니 철거민들은 집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입주권으로 팔았습니다. 수십 채의 아파트 입주권을 사서 파는 이들에게 철거촌은 ‘놀이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스물아홉에 못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은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그는 재개발지구의 표찰을 거의 몰아사들이다시피 했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난장이’의 딸 영희는 ‘그’의 집 금고에서 입주권과 표찰을 훔쳐 나와 아파트 입주 신청서에 아버지의 이름을 적지만, 아버지는 이미 벽돌 공장의 굴뚝에서 숨진 뒤였습니다.
2022년 12월25일 조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로, 자꾸만 <난쏘공>이 생각납니다. “<난쏘공>이 300쇄를 찍고 10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지만, 책이 세대를 바꿔가며 읽혀도 난장이들의 고단한 삶은 바뀌지 않았”(이문영 <한겨레> 기자)습니다. 이런 세상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오래도록 ‘쓰지 않는 것’을 두고 자신과 싸웠던 글쟁이도 있는데, 나는 누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어떤 세상을 꿈꾸며 기사를 쓰고 있는지,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2020년에도 ‘난장이’들의 처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취재하면서 만난 50대 김성천씨도 서울 사당동 아파트 재개발 사업 때문에 2009년 쫓겨났습니다. “철거당해서 쫓겨난 뒤에 들어간 집이 하필 ‘깡통전세’였어요.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죠. 결국 전세보증금도 날렸죠.”
2023년이라고 다를까요.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깡통전세’ 이야기입니다. 부동산시장이 침체하고 집값이 하락하는 시기엔 집값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 피해는 온전히 전셋집에 사는 서민들의 몫입니다. 최근 언론에서 ‘빌라왕’이니 ‘건축왕’이니 하면서 나오는 “무서운 사람들”인 부동산투기 업자들, ‘바지 임대인’들 때문에 수천 명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깡통전세 피해자가 가장 많은 인천 미추홀구를 찾아간 이유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설 인사를 드립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미 언론 보도로 아시겠지만,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간부가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와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988년 창간 때 언론사 최초로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 한겨레였습니다.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국민이 주주인 언론이 한겨레입니다. 그 신뢰가 허물어졌습니다. 부끄럽고 또 죄송합니다.
한겨레신문사는 해당 간부를 해고하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자 대표이사와 편집국장이 사퇴했습니다. 언론학자, 변호사 등 외부 위원 4명과 사내 노사 추천 위원 9명으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꾸려, 금전 의혹뿐 아니라 보도에 미친 영향이 있었는지 등을 이른 시일 안에 철저하게 조사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말할 수 없이 부끄럽지만,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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