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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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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표지이야기’를 원한다 ① ‘착점’에 대하여
등록 2022-06-05 15:01 수정 2022-06-07 02:14

‘커버스토리’는 많지만 ‘표지이야기’는 <한겨레21>에밖에 없다.

‘표지이야기’란 영어 ‘커버스토리’의 번역어이다. 영어사전에 커버스토리는 표지와 연관된 잡지의 기사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순화된 한국 번역어는 ‘표지 기사’이다. <한겨레21>이 일반명사 커버스토리를 ‘표지이야기’로 둔 것은 1997년인 제164호부터다. 포커스를 초점, 월드를 지구촌, 라이프를 삶으로 바꾸는 외래어 꼭지명 순화 과정의 하나였다. ‘표지이야기’는 구글에 쳐봐도 책의 표지 작업을 한 디자이너의 발언을 다루는 ‘표지이야기’ 정도가 눈에 띈다. 그러니까 표지이야기는 ‘번역’만 잘했을 뿐인데 새로워진 단어다. 앞으로 세 차례 <한겨레21> 표지이야기 공모제 안내를 이어간다. 이번회는 ‘착점’이다. 착점이란 바둑의 첫수를 말한다.

깊이 있는 시선을 얻는 법

의심할 여지 없는 표지이야기의 착점은 특종, 단독이다. <한겨레21>은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1994년 제8호)라든지 ‘삼성 전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2007년 제683호), ‘부산저축은행의 돈을 갖고 튀어라’(2011년 제858호) 같은 희대의 특종을 표지 기사로 올렸다. 특종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운’을 기획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종이 아니라도 대체로 이미 보도돼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안을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보도. 또는 현상의 이면을 들춰 깊이 있는 통찰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보도”는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이 말을 전한 엄지원 전 <한겨레21> 취재1팀장(현 <한겨레> 정치부)이 사건을 다르게 바라본 기사로 꼽은 것은 제1024호 ‘부끄럽다, 당신들의 무기장사’다. 2014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교전 현장에서 발견된 한국 기업과 이스라엘의 무기 거래를 다뤘다.

시선에 깊이를 담을 수 있는 것은 눈 밝은 ‘정주자’의 특권이다. 엄 전 팀장이 뽑은 또 다른 표지는 제1389호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도시’다. “르포르타주를 통해 독자가 모르던 세계의 일면을 잘라서 배달해준 듯하다.” 이 기사를 쓴 방준호 기자(현 <한겨레> 사회정책부)는 <한겨레21>에서 쓴 첫 기사인 ‘공장이 떠난 도시’(제1269호)를 비롯해 ‘정주 르포 기사’를 써왔다. 외국인 노동자가 주인공이 된 것은 그곳에 오래 머물렀기에 가능했다. “관심 있는 소재와 주어진 소재를 이어보다가 쓰게 된 기사다. ‘인구 소멸’이란 소재가 (편집장한테서) 숙제처럼 던져졌는데, 애초 관심 있던 ‘제조업 노동’이라는 소재와 연결해보고 싶었다. 연결하다보니, 제조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라는 존재가 등장했다.”(방준호 기자)

김선식 전 취재2팀장(현 <한겨레> 전국부)의 제1359호 ‘가덕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한 2021년 2월 입지 예정지 가덕도를 직접 가본 뒤 착점을 ‘상괭이’로 잡았다. “가덕도 국수봉, 앞바다, 문화유적 등을 현장 취재했는데, 피해 당사자인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호출함으로써 기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해당 입법(과정)의 폭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덧붙여 김 전 팀장은 좋은 표지이야기의 조건을 “인/사/공이다.(인국공 아님) 인물, 사건, 공간을 통해 특정 사안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학부모와의 대화, 전문가의 전언에서

방준호 기자가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한 제1312호 ‘야구장 노예가 한국에 묻는다’는 한 시절을 휩쓴 사건의 2년 뒤를 전한 기사다. ‘보도 그 뒤’ 또한 훌륭한 착점이다. “사건 자체는 ‘충격’ ‘노예’ 같은 자극적인 단어로 이미 알려진 것이었다. 이 기사는 그런 기사들과 선을 긋고 철저히 피해자의 시선으로 본다.” <한겨레21>이 찾는 표지이야기는 기자의 시선을 벗어나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포함한다.

표지이야기 소재는 어디에나 있다. <한겨레21>의 ‘1반만 있는 도시학교’는 임대아파트의 존재 때문에 학급 수가 달라지는 학교를 들여다봤다. 당시 기사를 쓴 서보미 기자는 학부모와의 대화 과정에서 도시의 과소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이를 변지민 전 기자가 아파트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지만 학급 수의 격차가 나는 학교를 구글 지도 등 공개된 자료로 정교화했다. 3부작 연속 기획인 ‘자해’(제1237호~제1239호)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 문제가 보고되던 시기 발 빠르게 의제화한 표지 기사다. 전정윤 전 취재팀장(현 <한겨레> 사회정책 부장)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자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기사를 썼다.

다른 세계의 ‘보편적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것은 의제 설정에 도움이 된다. ‘번역’ 과정이다. 제592호 ‘국기에 대한 경례를 없애자’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구시대의 잔재를 끄집어냈다. 진보 역사학자 박노자의 러시아 국기에 대한 맹세가 기사의 맹아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1000호(2014년) 기획으로 선보인 ‘기본소득’ 역시 정치권에서 정책화하기 전 표지이야기로 다뤘다. 학계에서 먼저 논의된 것이나 국외의 상식은 한국 사회에 좋은 화두로 던져질 수 있다. 잘된 번역이다.

젊은 목소리를 기다린다

2019년 실시한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에서 당선된 작품들은 표지이야깃거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류운정 작가의 ‘#미투 극장전’(제1307호)은 연극판에서 실제 겪은 #미투 현장을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르포 형식으로 보여줬고(현장 부문), 하미나 작가의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제1342호)는 20대 여성 우울증 당사자의 목소리로 같은 시대를 앓는 세대의 특징을 보여줬다(시대 진단). 도우리 작가의 ‘좋아요 사회’(제1324호)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당사자를 인터뷰해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냈다(기획 부문). 세 작가는 모두 2030 여성이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우리가 제일 애타게 듣고 싶은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공모전은 더할 나위 없는 표지이야기의 훌륭한 착점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21 ‘표지이야기’를 직접 써주세요
https://h21.hani.co.kr/arti/reader/together/51998.html


##제592호 ‘국기에 대한 경례’를 없애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6/01/021003000200601030592011.html

##제1000호 소득을 나눠갖는 세상을 상상하라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6474.html

##제1024호 부끄럽다, 당신들의 무기장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7697.html

##제1237호 ‘자해계’ 운영하는 ‘자해러’ 아시나요?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167.html

##제1302호 임대아파트 옆 섬이 된 학교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8386.html

##제1307호 #미투 극장전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8489.html

##제1312호 제1312호 ‘야구장 노예’가 한국에 묻는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650.html

##제1324호 ‘좋아요’ 사회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

##제1342호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633.html

##제1359호 가덕도에 상괭이가 산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219.html

##제1389호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도시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2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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