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방적인 고통은 ‘교전’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포’ 이후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역사는 66년 동안 학살과 착취, 추방으로 얼룩졌습니다. 이 기나긴 ‘나크바’(아랍어로 대재난을 뜻함)에는 공범들이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 등 강대국들이 이익에 따라 유대인들을 적극 도왔고, 그 자신 중동의 땅따먹기에 나섰던 유럽 국가들이 방조해왔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아시아의 반대편 끝에서 벌어지는 절망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하려던 평화활동가들이 이스라엘군에 사살당한 직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찬사 속에 이스라엘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가자 현지에서는 한국 대기업의 브랜드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불도저가 원주민의 삶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국내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가자 안의 우리, 우리 안의 가자를 들여다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노래한 것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조선의 시인입니다. 착취당한 기억을 나눠가진 자라면 누구나 팔레스타인의 동지입니다. 더는 ‘화약고’라는 둔감한 언어로 그들의 학살을 묵인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_편집자
팔레스타인 사람이 모는 굴착기가 이스라엘의 버스를 들이받아 이스라엘 사람 1명이 숨졌다. 피의자는 그 자리에서 사살됐다. 주검들 대신 눈에 띄는 건 거대한 몸집의 노란 굴착기다. 굴착기에 쓰인 7개의 굵은 알파벳은 굳이 읽으려 애쓰지 않아도 한눈에 각인된다. ‘HYUNDAI’. 지난 8월4일 예루살렘에서 생긴 일이다.
‘가자’+‘굴착기’ 검색어 넣으면 나오는 사진이것은 하나의 은유적 장면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한 달째 폭격이 이어진 동안, 땅을 점령당한 한 남자가 견딜 수 없는 분노를 품고 점령자들에게 뛰어들었다. 그가 점령자들을 전복하는 데 사용한 물건은, 점령자들이 오랫동안 그들의 집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 사용해온 굴착기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 그가 왜 ‘테러’의 도구로 그 노란 굴착기를 택했는지 물을 수 없다. 먼 거리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짐작해볼 뿐이다. 친구의 집을 부쉈던 굴착기, 그 자리에 정복자들의 역사를 세운 굴착기. 그는 반드시 ‘그것’으로 ‘그들’을 응징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원주민’들에게, 국제 연대를 위해 찾은 평화활동가들에게 현대중공업의 굴착기는 이미 하나의 아이콘으로 굳어져 있다. 구글에서 영어로 ‘가자’+‘굴착기’, ‘이스라엘’+‘굴착기’ 등의 검색어를 넣으면 굳이 ‘현대’(HYUNDAI)를 찾지 않아도 금세 팔레스타인 가옥들을 부수고 있는 현대 굴착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엔도 우려를 나타낼 정도다. 지난해 5월 유엔 특별보고관 리처드 포크는 9300여 팔레스타인 거주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동예루살렘 지역에서의 도로 건설에 대한 즉각적인 중지를 요청하면서 “공사 현장에서 눈에 띄는 볼보, 캐터필러, 현대(중), JCB 등 이 사업의 파트너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굴착기에 선명히 적힌 철자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적개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의 풀뿌리단체 ‘스톱더월’은 현대중공업이 이스라엘의 인종청소에 공모한다며 이를 고발하는 동영상도 제작했다.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라말라의 유엔사무소 앞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현대의 굴착기를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과 기아자동차도 같은 이유로 평화활동가들에게 비판받아왔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 만나는 한국 기업의 광고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수십 년 동안 이어온 폭력과 착취의 현장에서 만난 한국 기업의 이미지에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국가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인종청소함으로써 완전한 ‘유대인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공모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 정부와 국내 일부 기업들은 이스라엘의 폭력으로부터 물리적 거리만큼 떨어져 있지 못하다. 탈무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까지, 작지만 강한 유대민족에 대한 동일시 내지 동경이 뿌리 깊다. 미국의 우산 아래 비호받는 나라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최근엔 두 나라의 독특한 ‘병영국가’ 체제도 무기 거래 등에서 결속을 강화해주고 있다.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이 정말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서구 외신의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고 있는 처지다. 한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착취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는지도 깊이 관심을 두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권, 기권… 가자지구 공격 조사에도 기권한국 정부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한 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핵심 사안에서 ‘기권’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점령에 공모해왔다. 2002년 4월 팔레스타인 제닌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됐다. 기권했다. 2010년에는 이스라엘이 봉쇄된 가자지구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목적의 평화활동가 9명을 사살한 사건에 대한 결의안이 상정됐다. 역시 기권했다. 이번 7월 가자지구 공습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21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조사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군사공격을 즉각 중단하고 인권침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은 찬성 29, 반대 1, 기권 17로 최종 채택됐다.
아이들을 포함해 1천여 명의 비무장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보고도 한국 정부는 다시금 ‘기권’을 택했다. 영국·일본·이탈리아·프랑스·독일 같은 과거 식민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반면 한국과 같은 피식민 지배 경험을 가진 베트남·인도·브라질·알제리 등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나라인 미국의 눈치보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이번 표결을 통해 정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학살 행위를 방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참여연대에 보낸 회신(7월25일)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정부는 아랍그룹이 제의한 이번 결의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거론하지 않는 등 공정성 문제에 따라 기권하였으나 수석대표 발언을 통해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 국제인도법 및 인권법 준수와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우리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의 해명과 달리, 결의안 본문에는 “로켓 발사로 두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이 사망한 것을 포함해, 어디서 발생했든 간에 민간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규탄한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2차 질의를 했지만 아직 답은 듣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단순히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랍 지역에서 민간인 공격에 쓰일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스라엘에 탄약 등을 줄곧 팔아왔다. 유엔 세관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은 2008~2013년 227억원어치의 무기와 탄약을 이스라엘에 수출했다. 미화 1천만달러 상당의 폭탄, 수류탄, 어뢰, 지뢰, 미사일, 부속품도 포함돼 있다.
“민간인 학살로 간주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한국산 무기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하며,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로의 무기류 수출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규탄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중대한 인권침해에 사용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재래식 무기의 국제 이전을 엄격히 규제하는 ‘무기거래조약’에 서명했지만 이마저 종이 쪼가리의 맹세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최하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는 “유엔 세관 통계는 소형 무기 관련 기록만 관리해 선박 등의 거래는 알 수 없으므로 그 밖에 추가적인 무기 거래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절충교역, 미국·독일 이어 세 번째 규모병영국가인 이스라엘과 한국은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 방위사업청은 2006~2012년 이스라엘과 10건의 ‘절충교역’(국제 무기 거래에서 무기를 파는 나라가 사가는 나라에 기술 이전이나 부품 발주 등의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무역 형태)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이는 전체 절충교역에서 13.7%를 차지한다. 미국(58.9%), 독일(15.1%)에 이어 세 번째 규모다. 이스라엘로부터 경쟁을 통한 상업구매 방식으로 구입한 무기 조달 규모는 이명박 정부 들어 늘었다. 2007년 282억원에서 2008년 491억원으로 늘었다가 2009년엔 2086억원까지 급증했다. 역시 미국, 독일에 이어 3순위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하루 100여 명씩 죽어나가던 지난 7월22일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스라엘과 무인항공기 분야 기술협력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반전평화연대(준) 간사를 맡고 있는 김어진 경상대 연구교수는 “무인항공기들의 용도는 뻔하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폭격을 위한 사전 탐지에 쓰일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요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미사일방어체제 ‘아이언돔’에 대한 한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너무 비상해서 끔찍할 정도다. “이스라엘 미사일 방어시스템 ‘아이언돔’ 수출길 활짝”(), “이스라엘 아이언돔에 시선… 한국도 관심 있나”(SBS)와 같은 기사들에서 언론은 “최근 가자지구 사태를 통해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시스템 아이언돔이 성능을 입증했다”며 국내 도입 가능성을 점쳤다. 팔레스타인의 통곡이 아직 그치지도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늘려가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Boycott(불매), Divestment(투자 철회), Sanctions(제재)를 의미하는 BDS운동은 2005년 설립된 팔레스타인의 BNC(BDS민족위원회) 주도로 진행되는 전세계적인 캠페인이다. 아랍 땅의 식민 상태 종식,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 승인,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과 재산권 보호가 목표다. 이스라엘이나 친이스라엘 성향의 다국적기업이 만든 제품을 불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스라엘과의 학술·문화 교류도 거부한다.
한국에선 아직 낯설지만 여러 나라의 시민사회가 실효성 있는 방식으로 이 캠페인에 동참하는 중이다. 지난 6월20일 미국 장로교가 휼렛패커드(HP)·캐터필러·모토롤라솔루션스 등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0년 가까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지속해온 미 장로교 쪽은 2100만달러(약 214억원)의 주식 매각을 결정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국가연금기금 금융자산에서 이스라엘의 무기제조 업체인 엘빗시스템스를 삭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대학은 이스라엘의 벤구리온대학과 교류를 끊었다. 지난해 12월 미국 지식인 5천 명이 모인 아메리카학회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학문의 자유가 구속된 모든 학자와 학생들과 연대하고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스라엘 학계와의 학술 교류 중단을 선언했다.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전세계적 운동BDS운동은 단순한 소비자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뎡야핑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67년 점령 이후 50여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무력투쟁부터 평화협정까지 이스라엘을 막기 위한 여러 수단이 동원됐지만 폭력을 끝낼 수 없었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가장 많이 규탄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국제기구의 결정과 무관하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화는 급속히 진행돼왔다. BDS는 그런 이스라엘에 점령 상태를 종식할 때까지 일체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자는 움직임이다.”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결국 그 물적 토대에 위협을 가하는 방법뿐이라는 뜻이다.
BDS운동에 대한 이스라엘 쪽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그 효력을 간접 증명한다. 의 보도(2014년 7월2일치)를 보면 2013년 3월14일 미국의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 연례회의 연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BDS’를 18차례나 언급했고 연설 시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이 문제에 할애했다.
한국은 아직 이스라엘과의 교류가 구미 국가들만큼 크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BDS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뎡야핑 활동가의 의견이다. 팔레스타인 BNC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기업으로 다음과 같은 업체를 꼽고 있다. 앞서 굴착기를 판매한 현대중공업도 이름을 올렸지만, 현대중공업은 2013년 현지 업체인 AEG사와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KCNPP(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네트워크)가 지난 7월22일 한국 YMCA에서 토론회를 열고, 이스라엘 소비자 보이콧 운동 대상 기업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아하바(AHAVA)- 이스라엘 화장품 업체로 사해의 천연자원을 수탈해 정착촌에서 가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하바는 국내 유명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유통되며 2011년 서울에 단독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스위티(Sweetie)- 이스라엘 농산품인 과일 스위티도 점령지에서 생산돼 이스라엘 기업이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의 쇼핑몰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소다스트림(SodaStream)- 스칼릿 조핸슨이 광고해 눈길을 끌었던 탄산수 제조기 업체로 정착촌에서 생산하고 있다. 삼성은 지펠냉장고에 소다스트림이 내장된다고 밝혔다.
언젠가 폭격은 재개된다BDS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끝내는 데 정말 도움이 될까.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공격과 추방은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탄생 목적은 팔레스타인을 도려내는 데 있다. 팔레스타인의 인구를 줄이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이고 국가 정책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김어진 경상대 연구교수의 설명이다. 이번에 공습이 소개되더라도 폭격은 언젠가 재개될 거라는 이야기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참고 문헌‘한국과 이스라엘 관계 보고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2
, 일란 파페, 후마니타스, 2009
, 필 마셜, 책갈피, 2001
, 신경림·자카리아 무함마드 등, 열린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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