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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 노예’ 구출 2년... 가해자는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잠실야구장 노예’ 신태원씨, 일 시킨 고물상은 벌금 100만원, 친형은 기소도 안 돼… 노동청·검찰·법원은 ‘단순 임금체불 문제’로 장애인 착취 해석
등록 2020-05-09 06:49 수정 2020-05-12 01:32
5월4일 신태원(62·가명)씨와 박은상(64·가명)씨의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신씨가 거실에 앉아 복지관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5월4일 신태원(62·가명)씨와 박은상(64·가명)씨의 서울 양천구 자택에서 신씨가 거실에 앉아 복지관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0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5월5일 어린이날 개막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퍼지면서 통상 3월에 열리던 프로야구가 미뤄졌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뒤늦게라도 시작됐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2020년 봄, 야구 경기를 보러 온 팬들로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주변이 북적이고 그들의 환호와 탄식이 야구장 담장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적장애인 신태원(62·가명)씨에게 잠실야구장은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2018년 3월 잠실야구장 서편 부지 적환장(주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발견됐다. 적환장을 둘러싼 바리케이드도 없고, 어딘가 묶인 채 생활한 것도 아니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 10년 넘게 방치된 채 죽어라 일만 했다. 언론은 그를 ‘잠실야구장 노예’라 이름 붙였다.
“잠실야구장은 화·수·목·금 6시30분부터, 토·일은 또 달라예.” 신씨는 지금도 불쑥 그때를 기억해냈다. 분노와 원망이 기습하듯 찾아오면 때때로 허공에 대고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경찰서 가서 (일을 시킨) 고물상 업주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어예. 그 새낀 벌 좀 받았을 깁니더.” 그러나 <한겨레21>이 확인한 현실은 신씨의 예상과 달랐다.
염전 노예, 타이어 노예, 원양어선 노예, 축사 노예… 수식어만 달리한 채 장애인 노동착취와 학대 사건이 매해 반복된다. 그중에서도 ‘잠실야구장 노예 사건’은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장애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챙긴 고용주나 이를 방치한 채 각종 급여를 가로챈 가족은, 그러나 엄벌을 피해갔다. 수사기관이 이를 범죄나 인권침해로 보지 않고 단순 임금체불 문제로만 접근한 탓이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경각심을 주는 형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애인 학대 사건은 오늘도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잠실야구장은 화·수·목·금 6시반부터 시작해예. 토·일은 또 달라예. 리어카 끌면 힘들어 쭉(죽)어요.”

신태원(62·가명)씨가 ‘불쑥’ 묻지 않은 말을 꺼냈다.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집 근처 시장에 나가 벼르고 별렀던 양복을 한 벌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의 곁엔 거의 매일 집으로 찾아와 살림과 생활을 도와주는 주거코치가 있었다. 신씨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에 가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석 달째 복지관에 가지 못했다. 며칠 밤이 지나야 새로 산 양복을 입고 복지관에 갈 수 있을지, 날짜와 요일을 세기 시작했다. 빠르게 회전하던 신씨의 생각 회로가 잠실야구장에서 잠시 멈춘 듯 보였다. “연장전 할 때 분리수거 시작했어요. 페트병에 물이 많이 나와요. 담배 8갑도 주웠어예. 야구 보는 사람들이 저저저 집어던지고 버렸어예.” 야구 관람객이 먹다 버린 피자 끝부분만 먹던 신씨는 쉼터에서 온전한 피자 조각을 봤을 때 깜짝 놀라며 “이게 진짜 피자냐”고 물었다.

신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잠실야구장 노예’로 불렸다.

2018년 3월 프로야구 개막도 하기 전, 잠실야구장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현대판 노예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신씨는 잠실야구장의 쓰레기를 모아두는 적환장 내부 비좁고 더러운 컨테이너에서 살며 하루 10시간 넘게 분리수거를 해왔다. 그에게 일을 시킨 고물상 업주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간헐적으로 줬다. 턱없이 부족한 대가였지만 이러한 임금마저 신씨가 손에 쥔 적이 없었다. 친형이 보유한 신씨 명의의 통장으로 돈이 입금됐기 때문이다. 신씨의 지적 수준은 5살 아동에 미치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빼고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없다.

응급구조 뒤 일지

응급구조 뒤 일지


먹다 버린 피자 끝부분만 먹다 보니

2년 전, 그는 익명을 요청한 시민의 언론 제보로 잠실야구장 컨테이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거쳐 현재는 양천구에 전셋집을 얻어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룸메이트 박은상(64·가명)씨는 2018년 4월 쉼터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염전 노예’로 불리던 또 다른 학대 피해 지적장애인이었다. “우리 집에 와서 염전 일을 도와주면 급여를 주겠다”는 염전주의 말을 듣고 7년 넘게 돈도 받지 않고 일했다. 2014년 전남 신안군의 섬 신의도에서 염전 노예 사건이 터지자, 염전주는 경찰 단속을 피해 박씨와 허위 혼인신고까지 했다. 박씨는 가까스로 구출됐지만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방구석에 앉아 혼잣말을 하거나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적응과 자립을 돕는 주거지원서비스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고 신씨를 만났다.

상황도 성향도 맞은 두 사람은 자립을 결심했다. 자립생활 체험홈(자립에 필요한 능력을 키워 독립을 지원하는 사업)에서 요리부터 집안 정리까지 일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을 한 달 동안 익혔다.

두 사람은 이제 가족보다 가까운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신씨는 두 살 많은 룸메이트를 ‘박 선생님’이라며 꼬박꼬박 높여 부른다. 거동이 편치 않은 박 선생님 대신 밥을 짓고 고추장멸치볶음을 만든다. 박 선생님은 집에 온 복지관 소속 주거코치가 ‘반찬 뭐 해드릴까요?’ 물으면 “태원이가 먹는 거 나도 먹을란다” 답한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이기 전, 두 사람은 함께 날마다 복지관을 찾았다. 주거코치도 신씨 집을 거의 매일 방문하고, 사회복지사도 이들을 정기적으로 살핀다. 뒤늦게 적게나마 받아낸 신씨의 임금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신탁·의사결정지원센터에서 관리한다. 이 기관은 매월 일정 금액을 생활비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노후자금으로 저축해놓았다. 신씨가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 검토를 거쳐 계좌에 돈을 입금하거나 구매를 대행해준다.

신씨가 지내던 잠실야구장 옆 컨테이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유예된 일상이 제자리를 찾았다. 진작 이렇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은 때때로 잠실야구장 어딘가를 헤맨다. 분노와 원망이 그를 기습하듯 찾아온다. 때때로 허공에 대고 육두문자를 내뱉는다고 했다. “경찰서를 몇 번 왔다 갔다 했어예. (일을 시킨) 고물상 업주 얼굴을 보여주데예. 집어넣어야 한다고 했어예. 꼴도 보기 싫다카예. 그 새낀 벌 좀 받았을 깁니더.” 그러나 현실은 신씨의 예상과 달랐다.

2018년 3월8일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 응급구조되기 전, 신씨가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적환장(주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2018년 3월8일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 응급구조되기 전, 신씨가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적환장(주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서울 한복판의 ‘현대판 노예’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뒀다. 34살 때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1991년 어머니가 숨진 뒤 큰형네에 잠시 얹혀살다 장롱공장, 서랍공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잠실야구장에서 지내며 일하기 시작했다.

신씨는 잠실야구장에서 나오는 쓰레기에서 캔이나 페트병을 분리수거하거나 폐지 줍는 일을 했다.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새도록 잠실야구장의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뒤졌다. 눈도 붙일 새 없이, 오후 1시부터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나갔다. 잠실야구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해 17년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2006년부터 12~13년 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고물상 업주와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도 않았다. 대략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쓰레기로 가득 찬 회색 컨테이너에 살면서 야구를 보러 온 관중이 먹다 버린 음식물로 끼니를 때웠다.

고용노동부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 조사 결과 고물상 업주(55)는 하루 일당 3만원만 줄 때도 있었고, 월 70만원을 지급할 때도 있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3521~4285원인데, 이는 2015~2018년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 5580~7530원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얼마 안 되는 돈조차 신씨는 손에 쥘 수 없었다. 친형 신정민(76·가명)씨가 1414만원이 든 급여 통장은 물론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장애인 수당 6889만원까지 관리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가 그를 응급구조한 당일에도 잠실야구장 근처에서 주운 곰팡이 핀 빵을 먹고 있었다. 먹고 마시며 환호성을 지르던 야구장 담장 너머로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가해자 처벌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 송파경찰서 지능범죄수사과와 노동 관련 특별사법경찰인 서울 동부고용노동지청이 수사에 나선 이유였다.

저임금 또는 무임금으로 신씨를 부렸던 고물상 업주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과 인천지검을 거쳐 인천지법에 이르면서, 업주의 범죄 혐의는 여과되고 축소됐다. 10년 넘는 장기간의 착취는 오히려 공소시효라는 면죄부를 얻어내는 빌미가 됐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은 공소시효가 5년이다. 근로기준법을 어기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은 고물상 업주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난 2015년 3월부터 신씨의 체불 임금을 계산했다. 프로야구 비시즌(10~3월)엔 매일 일을 시키진 않았다는 고물상 업주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계산된 3년간의 체불 임금은 974만5380원에 그쳤다.

응급구조되기 전 신씨가 기거하던 잠실야구장 적환장 컨테이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응급구조되기 전 신씨가 기거하던 잠실야구장 적환장 컨테이너.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강제근로 아니’라고 본 노동청

통상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해도 고물상 업주에게 돈을 더 받아내기 어렵다는 근로감독관 등의 설명에 신씨는 810만원만 받고 업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2015년 3월부터 3년 동안 업주가 8924만원이나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합의 과정에서 고려됐는지는 알 수 없다. 임금이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두 가지 혐의는 합의로 인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됐다.

통상의 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을 처리하듯, 이 사건 또한 근로기준법상 ‘강제근로 금지’ 조항 적용 여부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이 조항은 폭행·협박·감금 등 정신과 신체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해 당사자 의사에 반해 노동을 강요한 행위를 처벌한다. 노동청은 신씨가 응급구조 당시 컨테이너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 정황 등을 종합해 ‘자발적인’ 노동 의사가 있었다고 보았다. 신씨를 최초로 구조했던 인권활동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신씨는 컨테이너를 떠나길 거부하면서 “사장에게 혼난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활동가들은 학대 정황이라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고물상 업주는 2019년 10월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는 데 그쳤다. 약식명령은 검사가 제출한 서면만 보고 피고인에게 벌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간이 재판이다. 그는 지적장애인을 컨테이너에 살게 하면서 욕설을 하고 재활용품 분류 작업 등을 강요한 혐의(장애인복지법 위반), 서울시 소유의 잠실야구장 부지를 허가 없이 적환장으로 사용한 혐의(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위반)로 정식 재판에 넘겨지긴 했다. 올해 1월, 인천지법은 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낮은 지적 능력과 열악한 지위를 이용해 영리행위를 했다.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잘못을 뉘우치는 점, 가혹행위를 했다거나 악의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사정은 찾아볼 수 없는 점,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신씨 명의의 통장을 가져간 친형은 솜방망이 처벌마저 피해갔다. 2019년 4월 서울서부지검은 신씨의 생계급여와 장애인 수당, 임금 횡령 혐의를 받는 친형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처분에 대해 신씨 쪽은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됐고 서울고법에 낸 재정신청(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적법했는지 가려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환장 컨테이너에 있는 냉장고에는 얼린 밥덩이와 쉰 김치만 있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적환장 컨테이너에 있는 냉장고에는 얼린 밥덩이와 쉰 김치만 있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내적 기준 없다’며 고소 의사 패스

형법엔 횡령 등 가까운 가족 간 재산 범죄 사건은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있다. 2018년 사건 당시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신씨에게 형에 대한 처벌 의사를 물은 뒤, 그의 이름이 적힌 고소장을 서울 송파경찰서에 냈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단체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수사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실제 서울서부지검 불기소 처분서를 보면, 피해자 고소 의사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고할 수는 있겠지만 내적 기준을 가진 생각이라 볼 수는 없고 주변 상황에서 유도되는 방식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심리평가 보고서 결과를 인용해, 신씨가 다른 사람의 일방적인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어 그가 한 진술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형의 동생 학대 여부, 급여나 수당의 관리 상태 등을 종합해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형 신씨가 동생의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장애인 수당 7천여만원 일부를 횡령한 사실이 있다고 보았다. 형은 동생 돈 4천만원을 본인 소유 빌라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은 이렇게 항변했다. “내가 죽고 나면 동생을 보살필 사람이 없다. 동생의 노후 보장을 위해 모아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용한 게 아니다.” “동생이 월급을 받아 써버리니 직접 관리했다.”

검찰은 형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해자를 지속해서 보살핀데다, 7천만원을 상환했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점을 고려해 “처벌 가치가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피의자를 처벌할 경우 피해자 가족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장애인 수당을 횡령한 혐의에 대해선 기소유예, 임금 횡령 혐의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사용한 정황이 없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가해자의 항변은 귀 기울이고 피해자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모아뒀다 나중에 돈을 주려고 했다’ ‘가족관계 단절이 우려된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돌봐줬다’는 건 가족 간 노동착취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내리는 전형적인 결론이다. 가정폭력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8월 신씨의 법률 지원을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형에 대해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고발했다. 그러나 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수사는 중단됐다.

불기소 처분 결과도 제대로 통보 안 해

지난해 서울서부지검은 형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신씨 쪽에 그 결과를 제대로 통보하지도 않았다. 형사소송법(제258조)에 따르면, 검사는 고소 또는 고발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거나 제기하지 않는 처분을 내리면 7일 이내 서면으로 고소인·고발인에게 그 취지를 통지해야 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지적장애인인 신씨에게 불기소 처분 결과 통지를 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이 차별 없이 형사사법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피해자를 의사결정 능력이 전혀 없는 의사무능력자로 간주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철저히 부정했다. 검찰 조직 내에 지적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무시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가해자의 항변만 고스란히 반영한 수사 결과라는 비판에 대해 서울서부지검은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했고, 그에 따른 증거 판단을 통해 처분한 결과다. 항고나 재정신청 등 불복 절차까지 다 진행된 사건에 대해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단체는 “왜 검찰이 신씨를 대면해 처벌 의사를 직접 물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피해자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2018년 심리평가 보고서만으로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 → 고소 능력이 없다 → 고소인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과정 자체가 문제라는 취지다.

지적장애인의 속내를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게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친형이 학대 가해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신씨의 형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그간의) 기사는 다 가짜뉴스다. 동생은 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신씨는 형이 지난해 한 번 찾아오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는 괜찮아예” 하면서도 “큰형님도 벌 좀 받아야 되예. 내 돈 다 뺏어가 가지고…”라고 말했다. 학대 피해자에게 처벌 여부를 결정 짓는 짐을 지우지 말고, 사회적 약자를 학대한 가해자는 무조건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보호 의무가 있는 가족이 그 의무를 저버렸다면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신씨의 가혹했던 삶을 좀더 빨리 발견할 수 없었을까. 2005~ 2006년 그는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장애인 수당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년 넘도록 이러한 지원이 온전히 그의 손으로 들어갔는지 점검되지 않았다. 2017년 11월 서울시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통상적인 발달이 크게 지연돼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 전수조사가 진행될 당시, 신씨 주소지 관할 동주민센터 직원이 형 집을 방문했다. 미리 전화하고 찾아간 조사였다. 형은 공무원 방문 날짜에 맞춰 동생을 집으로 데려왔다. 공무원은 신씨가 주소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낮에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사회복지 급여나 수입은 누가 관리하는지’ 등을 물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동생을 대신해 형이 답변했다. 당시 조사 결과엔 “특이사항이 없다”고 기록됐다.

<국민일보>에 걸려온 이름을 알 수 없는 제보 전화 한 통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의 응급구조로 이어지기 전까지 신씨는 존재하되 없는 사람처럼 취급됐다. 잠실야구장 적환장 부지를 관리하는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체육시설이 완전 개방돼 있는데다 야구가 보통 밤 10~11시에 끝나고 관중이 다 나가면 청소가 시작된다. 새벽에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다보니 신씨가 눈에 잘 띄지 않았을 수 있다”며 학대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시장 가고 싶으세요?” 신씨와 박씨의 일상생활을 돕는 주거코치는 ‘원하는 것’을 거듭 묻는다. 5월1일 시장 나들이는 신씨가 요청한 것이다. 며칠 전 몸이 불편한 박씨를 두고 홀로 시장에 다녀온 것을 마음에 걸려 했다고 한다.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더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하다.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물음에 신씨는 반복해 말했다.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제는 마음도 없다.” 대신 담배 한 개비를 한꺼번에 다 피우지 않고 반 개비씩 나눠 피워 아낀 돈을 모아 새 양복에 어울리는 ‘와이샤쓰’를 사고 싶다는 소박한 목표가 생겼다. 예순 평생 가족과 사회로부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지적장애인 신씨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과 일상이다. 늦게, 아주 늦게나마.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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