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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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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성전사와 난민 꼬마의 눈망울

등록 2022-02-12 20:49 수정 2022-02-14 09:38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그저 눈물만 납니다. 미얀마를 도와주세요.” “5·18 광주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미얀마 국민 여러분 힘내세요.” “국민 학살 쿠데타 주동 군부 지도자들은 반드시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미얀마는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새롭고 정의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끝내 당신들이 이길 겁니다.” “계속 응원할 수 있도록 소식 전해주세요.”

2022년 2월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지 꼭 1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1년은 미얀마 민중이 민주주의를 되찾으려 피 흘린 투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겨레21>이 ‘미얀마 쿠데타 1년’을 표지이야기(제1399호)로 다룬 인터넷 기사들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잡지가 나오고 며칠 뒤 오랜만에 죽마고우를 만났습니다. 전문직 종사자인 친구의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정담을 나눴습니다. 친구는 스포츠를 즐기고 음악을 좋아하며 양심껏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미얀마 사태’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친구는 우리가 겪은 근현대 정치사와 꼭 닮았다며 깊은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그와 저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때 12·12 군사반란(1979년)과 5·18 광주항쟁(1980년)을, 대학 시절에 6·10 민주화운동(1987년)을 경험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제1399호 표지 사진에 실린, 조준사격을 연습 중인 미얀마 시민방위군 여성 저격수의 눈빛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군용 모자 차양의 그림자가 드리운 까닭에 저도 미처 자세히 보지 못했던 눈. 결연함과 분노, 일발필중 다짐으로 날카로운 그 눈에 묘한 슬픔의 감정이 고여 있었습니다. 쿠데타가 나기 전 대도시 양곤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했던, 발랄하고 꿈 많았을 20대 여성이 지금은 사랑하는 부모와 ‘잠시 작별’하고 총을 들었습니다.

제1399호_표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제1399호_표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친구는 갑자기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응원의 마음을 보태고 싶다며 후원 방법을 물었습니다. 몇 곳을 알려줬더니 익명으로 기부하고 싶다며 저에게 대신 내달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곧장 제 계좌로 무려 50만원을 이체했습니다. 한순간 놀랍고 고맙고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자신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외국 시민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정당한 대의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마음만으로 적지 않은 돈을 흔쾌히 기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덩달아 뿌듯해졌습니다. 다음날 해외주민운동연대(코코·KOCO)에 친구의 정성을 전했습니다. 강인남 코코 대표도 깜짝 놀라며 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익명의 기부금은 미얀마 난민 구호에 소중히 쓰일 거라고 했습니다.

앞서 2021년 12월, 코코가 주최한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과의 대화’ 현장을 전한 제1391호 기사(‘멸치떼처럼 뭉쳐 싸웁시다!’)가 나간 뒤 기자는 강원도 춘천에 사는 한 시민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도 미얀마 민주화운동 후원 방법을 물었고, 미얀마 현지 소식을 생생히 전하는 소셜미디어 <미얀마 투데이>를 통해 시민방위군 쪽에 기부금을 전달했습니다. 제1399호 표지의 다른 후보 사진은 45쪽에 실린, 미얀마-타이 국경 지대의 난민 어린이가 야구 모자를 쓰고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청년 전사의 눈빛, 꼬마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눈에 하루빨리 일상의 행복과 미래의 꿈이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 우리은행 1006-201-472222,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우리은행 1005-604-163863,
미얀마 투데이: 농협 355-0077-270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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