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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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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동, 원미동, 사당동, 서영동…

등록 2022-01-27 00:08 수정 2022-01-27 07:03
1398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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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기사에 나열된 30대의 사례들이 무척 낯설었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웃음이 나왔는데 솔직히 웃기지는 않았다.’(조남주, <서영동 이야기>)

‘수도 없이 이사를 다니며 얻은 결론은 한 가지, 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집과 같은 뜻이었다.’(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1987년의 원미동과, 2022년의 서영동 그리고 1978년의 낙원구 행복동(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까지. 작가들은 가상의 동네에서 ‘집’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집은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동네가 재개발돼 ‘쫓겨난 사람들’이 되기도, ‘내 집’을 마련해 계층이동의 사다리에 올라타기도 했다. 40여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도 부동산을 둘러싼 욕망, 이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는 그대로다. 소설 안에서나, 밖에서나.

몇 년 전 잠시 기자 일을 내려놓고 1년간 공부할 시간을 얻었다. 그때 ‘사당동 사람들’을 주제로 논문을 한 편 썼다. 도시빈민이 모여살아 가마니촌, 무허가 판자촌으로 불렸던 서울 동작구 사당동은 1980년대 후반 도시재개발 사업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중산층의 공간’으로 재편됐다. 사람들은 비닐하우스, 임대아파트, 단독주택 등으로 흩어졌다. 1980년대 사당동에 거주했던 13명을 찾아, 30~40년간 이주경로와 주거형태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토지·주택 소유주와 세입자의 계층이동 궤적이 뚜렷하게 달랐다. 개발이익은 개인 사이에서도 불균등하게 배분됐다. 재개발 당시 ‘내 집 마련’이라는 좁은 문을 쉽게 통과한 이들은 중산층이 된 반면, 사당동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난 세입자들은 더 열악한 처지로 내몰렸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히 주거공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위치를 가늠하는 표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내 집’에 대한 집착을 부추긴 것은 국가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주거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주택 생산자인 기업과 소비자인 개인의 재원을 끌어들여 아파트를 마구 지었다. 아무리 집을 많이 지어도, 집이 계속 자산 격차를 증폭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비밀은 여기에 숨어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줄곧, 둘 중 한 가구는 ‘내 집’에 살고 있지 않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곳만을 뜻한다. 대선을 앞두고도 ‘내 집 마련’에 초점을 맞춘 공약만 넘친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는 ‘남의 집’이지만 ‘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방준호 기자가 ‘값’을 뺀, 진짜 ‘내 집’ 이야기를 세입자들에게 들어봤다. 엄지원 기자는 소유자보다 더 ‘내 집’을 사랑하는 이들, 이정규 기자는 살기 좋은 동네를 탐색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면도 일부 새 단장을 했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쓴 조귀동 작가가 경제에 정치 표심이 숨어 있다는 뜻을 담은 ‘경제유표’를 격주로 연재한다.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2년이 됐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에 속한 학자들이 ‘코로나19 알파-오메가’를 통해 매주 진단을 이어간다. 도발적인 문화 기사를 싣는 ‘레드’도 부활한다. 기자들 이외에 남다은, 현시원, 남지우 등 쟁쟁한 비평가들이 필자로 합류한다.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소개하는 ‘뉴스 큐레이터’는 뉴스룸의 젊은 기자 5명이 돌아가며 쓴다. 김양희 <한겨레> 기자의 ‘인생 뭐, 야구’도 시즌2를 시작한다.

설을 맞아, 어김없이 퀴즈큰잔치도 마련했다. 다만, 이번부터는 응모하는 종이엽서를 없앴다. 독자들의 손글씨를 마주하는 기쁨이 사라져 아쉽지만, 시대 흐름에 맞춰 온라인 구독 폼을 통해 퀴즈 응모를 받는다. 설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퀴즈를 풀고 정답을 남겨주시라! 195명에게 경품이 쏟아진다.

그리고 독자와 함께할 궁리는 쭉 이어진다. 설 연휴 동안 집안일을 누가 할 것인가를 두고 부부싸움 하신 독자 여러분은 주목하시길! 독자 참여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분담 현실, 나아가 정책 실태를 취재·보도할 예정이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500.html 참조) 독자편집위원회3.0에서 함께할 독자 여러분도 기다린다. 독자폰 010-7510-2154로 연락해주시길!

설 연휴 배송 관계로 다음주에는 잡지가 발행되지 않는다. 그다음 주에 찾아뵙겠다. 편안한 설 보내시길!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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