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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이 남 일 같지 않았던 이유

등록 2022-01-01 15:15 수정 2022-01-02 01:01

“지방소멸을 빠르게 소멸시키자”는 말을 뉴스룸에서 장난처럼 하곤 했습니다. 중차대한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호기로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장기 기획 연재물인 ‘2021 소멸도시 리포트’ 취재를 이어가는 중압감과 고단함을 누군가에게(주로 편집장)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2021년 8월 말부터 네 명의 기자가 이어달리기하듯 넉 달을 달렸습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바통을 쥐고 달렸고, 달리고 나면 바통 없이 다른 취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제1378호 표지이야기 ‘사라지는 마을에 살다’, 1387호 표지이야기 ‘1학년이 없어졌다’, 제1389호 표지이야기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도시’, 제1391호 표지이야기 ‘대도시 소멸의 전조’, 제1394호 표지이야기 ‘빛나지 않는다는 너에게’가 나왔습니다.

사라지고, 없어지고, 보이지 않고, 소멸의 전조가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 지 20년 넘은 전남 고흥군 농촌, 마지막 1학년 학생이 전학 가면서 1학년이 없어진 경남 거창군의 한 초등학교, ‘소멸 위기 지역의 희망’이라고는 차마 부를 수 없는 전남 영암군의 떠돌이 외국인들의 도시, “아무 대책도 없이 무너진” 대전광역시 원도심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똑같이 지방소멸 위기를 겪는데도 도시와 마을마다 다른 사정, 같은 마을 다른 주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현장 취재를 진행하면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기획했습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 말이 아닌 데이터로 지방소멸 위기를 진단하려 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10월19일 지정·고시한 인구감소지역 89곳 19~64살 남녀 주민 600명을 설문조사하고, 그중 20·30대 주민 8명 표적집단면접조사(FGI)에 착수한 배경입니다. 그렇게 수도권과 대도시의 빛에 가려 ‘빛나지 않는다는 너에게’ 600개의 마이크를 쥐여주었습니다.

인구감소지역 주민들 얘길 들어보니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충북 옥천군에서 남편, 두 살 아이와 함께 사는 30대 여성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더는 여기 못 있겠다. 최대한 빨리 이사할 생각이다.”

지방소멸 위기 지역을 취재하면서 종종 생각했던 말이 그때 다시 떠올랐습니다. ‘잡지 소멸.’ 그 많던 독자가 하나둘 떠나간 자리에 남아 오늘도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오래지 않아 소멸하거나 흡수될 것’이라고 미래를 쉽게 점치지만, 미래의 상태를 가정하기 전에 현재의 가치를 부여잡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요. 마침 이번호 표지이야기가 ‘어제와는 다른 세계’입니다. 그 ‘금지된 미래’를 상상해봅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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