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8호 표지이미지
2013년 <한겨레21>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경력단절여성인 것처럼 꾸며 5개월간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목표는 ‘연봉 2500만원을 받는 정규직 사원’으로 정했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집단상담’에서부터 편견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했더니 상담가가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했습니다. “시간제한을 지키지 못하죠. 신속한 판단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고.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전업주부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이미 12년간 마감 시간에 맞춰 기사를 써왔는데,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력서를 낼 때마다 떨어지니까 정말 내 성격 탓인가 자책하게 되더군요. 5개월간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끝내 실패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육아로 쉬었던 여성을 더 나은 직급으로 받아들이는 회사는 없다. 수평 이동도 힘들다.”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 현실은 그리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이번호는 비영리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2021년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서울 성수동 이른바 ‘성수밸리’에서 일하는 고학력 경력보유여성 52명을 심층 인터뷰해 삶의 경로를 추적한 보고서를 다뤘습니다.
한국의 경력보유여성(32명)은 양육과 직장에 대한 부담을 함께 지는 ‘이중부담’형이 다수였습니다(전체의 55%). ‘여성이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육 역시 엄마의 몫’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선 여성이 이중부담에 놓일 가능성이 크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김우정(46)씨가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갔다 온 사이 아이에게 사고가 나서 입원하면서 그는 “밤을 새우거나 해외 출장이 잦은, 육아와 병행하기 힘든” 일을 하는 건 “‘내 욕심’이란 생각이 자꾸 들고 ‘엄마가 희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그렇지 않았는데 저만 자꾸 죄의식이 생겼던 거예요.” 결국 김씨는 일을 그만두었고, 일터로 다시 돌아오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반면 미국의 경력보유여성(20명)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 유형은 남편과 일·양육·가사를 함께 상의하고 돕는 ‘네트워크 워라밸’형(전체의 31%)이었습니다. 정소영(43)씨는 남편과 양육과 일을 병행할 합의선을 만들었답니다. 셋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정씨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이후에는 남편이 조금 더 육아를 맡기로 했습니다. 아빠도 “양육자라는 점”을 이해하고 아내의 “커리어(경력)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남편이)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관계입니다. 네트워크 워라밸형은 이중부담형보다 여성의 삶의 만족도가 높고 평균 자녀 수(1.3명)도 많습니다.
연구진은 이중부담형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남성 육아휴직 확대’를 꼽습니다. ‘남녀 누구라도 육아를 할 수 있고 육아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내 아이를 내가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환경을 만들어야 여성이 네트워크 워라밸형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첫걸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그것을 이제 실천하면 됩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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