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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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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잘못이 아닙니다

등록 2021-08-21 21:10 수정 2021-08-23 08:26

“추모제 때 선호 걸개그림이 걸렸는데, 자꾸 용균이 얼굴하고 겹쳐 보이더라고요.”

한동안 그 말이 맴돌았습니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이는 산업재해 사고로 24살 아들(김용균)을 잃은 어머니가 한 말입니다. 23살 이선호는 2021년 4월 경기도 평택항에서 일하다가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습니다. 2021년 5월21일 선호 아버지 이재훈씨와 용균 어머니 김미숙씨가 만났습니다. 산재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나눈 이야기는 <한겨레21> 제1365호 표지이야기(‘용균이가 선호에게’)에 담겼습니다. 생김새가 다르지만 “똑같은 아픔”을 겪은 선호의 얼굴에서 용균이 얼굴을 떠올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저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몇 달 만에 그날의 대화가 새삼스레 다시 생각났습니다. 2021년 7월28일 전남 곡성군에서 전봇대 위에 올라 일하다가 갑자기 숨진 28살 이훈우(가명)씨 부모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선호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과 이선호의 죽음이 겹쳐 있듯, 이선호의 죽음과 이훈우의 죽음도 닮았습니다.

선호는 아버지가 일하던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선호씨 아버지는 인터뷰 때마다 말하곤 했습니다. “위험한 일이었으면 아들을 데려왔겠냐”고. 아버지는 아들의 영정 앞에서 몇 번이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아빠를 절대 용서하지 말라”고 절규했습니다.

훈우씨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국전력공사(한전) 협력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봇대에 올라가 전깃줄을 보수하거나 철거하는 일을 5년 가까이 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뷔페 조리사였던 아들은 근무수당이 줄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한전 협력업체 소속으로 전봇대 “심는 일”을 하면서 “만 7년 전깃밥을 먹은” 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배워서 해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당시 스물넷 아들에게 이 일을 권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려온 자신을 탓합니다. 마치 선호 아버지처럼요.

“사고가 나고 나서 애 아빠가 자책을 되게 많이 했어요. ‘내가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에서 일하러 광주로) 오라고 안 했으면’ ‘그냥 뭐가 됐든지 간에 거기(경기도) 있었으면’ ‘안 데려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하면서요.” 훈우씨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도, 남편의 자책도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훈우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20/380볼트(V)용 전기를 끊지 않은 채 작업했으니 감전사이거나, 30도 넘는 폭염이 21일째 계속됐으니 온열질환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8월2일 장례를 치른 뒤 유골함은 전북 순창의 절에 모셨습니다.

아들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제1376호 표지이야기 ‘이름 모를 청년의 죽음은 닮았다’)를 읽은 훈우씨 아버지가 카카오톡으로 짧은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은데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글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그 말이, 그 아픈 마음이 또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닮은 듯 반복되는 듯 보이는 죽음을 계속 기록하려는 이유입니다. 똑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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