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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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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갑질, 참지 말고 말해야 바뀝니다

등록 2021-07-03 02:10 수정 2021-07-03 02:10

2년 전 한 친구가 팀장의 괴롭힘을 호소했습니다. 팀장은 시도 때도 없이 “너는 밥값을 못한다”고 타박했고 자주 소리를 질렀습니다. 퇴근 뒤에도 업무를 지시한 것은 물론 주말에도 연락했고, 한 번 전화하면 한 시간씩 훈계했다고 합니다. 친구가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거짓말로 지어내 소문내기도 했습니다. 메신저에서 팀장 이름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던 친구는 어느 때부터 더는 괴롭힘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잘하지 못해서, 무언가 부족해서라며 자신을 탓했습니다. 더 잘하면 팀장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일만 생각했습니다. 언제 팀장에게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1분 대기조’처럼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라 권유했지만, 친구는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신고 이후의 삶은 알 수 없다고요. 직장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걱정했고, 팀장의 보복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더는 친구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불면증과 불안장애, 우울증을 얻은 친구는 끝내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2021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주년이 다가옵니다. <한겨레21>은 제1369호 표지이야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피해자 4명을 만났습니다. 기사에서 신고와 조사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법 시행 뒤 실제 직장문화는 바뀌었는지, 바뀌었다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친구 같은 피해자들이 용기 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터뷰에 응한 피해자 중 3명은 상처를 안고 퇴사했고,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박주연씨에겐 법 적용도 되지 않았습니다. 신고하지 않기로 한 친구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다른 업계로 이직한 친구는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팀장 아래 후배가 같은 이유로 또 관뒀다면서요.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라리 그때 내가 신고했다면 그 후배를 괴롭히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끝까지 맞서볼걸.”

기사가 나간 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마지막 뉴스였음 좋겠네요. 5명 미만 근로자들도 같은 직장인입니다. 피해자님 힘내세요’(di****),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리 바뀔 수가 있을까요. 몇 명이 더 희생돼야 조치가 취해질까요? 직장 내 괴롭힘은 소리 없는 살인과도 같습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기 바랍니다’(mch****)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물론 이런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가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명문화해 금지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상사나 선배가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는 인식을 확연히 바꿔줬으니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고용노동부의 의지입니다.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보면 ‘폭언, 폭행,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등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해선 특별감독이 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사회적 물의’라는 추상적 단어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이 여러 차례 발생한 사업장은 수시감독이든 특별감독이든 할 수 있도록 바꾸면 어떨까요?

2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친구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용기 덕분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성장할 수 있다고, 직장문화는 변할 수 있다고,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진다고요.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이어진 기사 - “괴롭힘 당했다는 거, 인정받고 싶어요”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5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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