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다보면 독일 사회의 구성원 또는 시민으로 느껴질 때가 있니?” 지난 5년간 독일에 사는 동안, 모국보다 독일에서 산 시간이 더 긴 동료들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 이주한 동료들은 물론이고 ‘이주배경’을 가진 독일인 동료마저 답은 같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낀 적 없어.”
이주배경이 있는 독일인 동료들은 조금 다른 생김새나 피부색 때문에 매일같이 ‘넌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들어야 하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갖는 것은, 모든 면에서 이민자로 구성된 독일 사회에서도 여전히 먼 미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시민으로 사는 이주자들이 자주 생각났습니다. 내 동료이자 친구, 이웃이었던 그들은 한국에서 누구보다 ‘시민’으로 살고 있지요. 현재 나눔의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분들과 지내며 일하는 야지마 츠카사는 베를린에서 먼저 만난 동료입니다. 그는 독일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현장에서 한결같이 활동가와 기록자로 서 있었습니다. 팜튀퀸화는 독일로 떠나기 전,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서울시청에서 만난 동료입니다. 처음 글로벌정책요원으로 일을 시작해 전문직 공무원이 된 팜튀퀸화는 유학생, 다문화가족 등 서울에 사는 여러 이주자를 지원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주민으로 20년 넘게 살면서 느낀 것은 편견이나 차별이 내 안에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주민으로 사는 한 독자의 댓글을 읽으며 인터뷰에 참여했던 네 명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표지사진 촬영을 위해 한겨레 스튜디오에 처음 다 같이 모였을 때, 서로 반가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모습이요. 우리가 더 많은 곳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2020년 통계청은 처음 ‘이주배경인구’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이주배경인구는 외국인, 그리고 내국인으로 분류되는 귀화자와 이민자 2세를 모두 포함합니다. 자료를 보면 한국 이주배경인구는 2020년 222만 명에서 2040년 352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독일에서는 독일로 이주한 이들의 체류기간 같은 현실을 고려해 ‘외국인’의 대체어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대체 표현으로는 ‘타국적의 내국인’ ‘독일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시민’ ‘외국 출신의 현지독일 거주자’ 같은 용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4월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조 바이든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이주자를 두고 썼던 용어를 금지하고 새 용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외국인’ 대신 ‘이주자’, ‘불법’이 아닌 ‘미등록’, ‘동화’ 대신 ‘통합’이란 단어를 쓰기로 말입니다.
이제 한국도 이주배경인구를 외국인이 아니라 타국적의 한국인,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시민, 외국 출신의 한국 거주자로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새로운 한국인인 이들이 존중되는 가까운 미래를 그려봅니다.
채혜원 객원기자·<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저자
*<독일 속의 한국계 이민자들>, 유정숙 지음, 당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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