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사흘 전(5월28일) 이곳에서 고장 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홀로 고치다가 목숨을 잃은 19살 청년 김아무개씨의 어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어머니는 초췌한 모습으로 A4용지 몇 장과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인쇄된 종이엔 마지막까지 고친 듯 볼펜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습니다”로 기자회견을 시작한 뒤에도 지하철은 2~3분마다 승강장에 도착했습니다.
“제 심장이 저 지하철 소리같이 계속 쿵쾅거립니다. (아들이) 혼자 얼마나 두려웠을까, 무서웠을까. 3초만 늦게 문을 열었더라면 그 얼굴을 볼 수가 있었는데….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면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처참한 모습에 알아볼 수도 없는 아들을 안치실에서 확인한 어머니는 아들이 남긴 유품인 갈색 가방을 열었습니다. “왜 거기에 사발면이 들어 있나요? 여러 가지 공구와 함께 숟가락이 있었습니다. 비닐에 싸인 것도 아니고. 그 사발면은 (온종일) 한 끼도 못 먹어서 먹으려던 것인데, 그것도 먹지 못하고 대기하다가….” 울음으로 맺지 못한 어머니의 말을 승강장 바닥에 앉아 노트북에 옮기다가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그 청년이, 그 어머니가 가슴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2021년에도 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청년과, 그 부모를 우리는 또 마주합니다. 경기도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던 23살 이선호씨가 그렇습니다. 대학 3학년인 그는 군대를 제대한 뒤 코로나19로 등교가 어려워지자 틈틈이 아버지 이재훈씨가 다니는 인력사무소에 나가 일했습니다. 주로 검역을 맡던 그는 4월22일 컨테이너 정리 작업을 하다가 300㎏ 넘는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습니다. 2018년 입사 3개월 만에 홀로 위험 업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당시 24살)씨, 2016년 구의역에서 안전문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씨에 이어 우리는 또 젊은 목숨을 어이없이 잃었습니다.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가 5월21일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글자와 함께 김용균씨 모습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엔 아들 죽음 앞에서 흥정하기도 싫고, 저도 8년 동안 그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었으니까 조용히 할까 했어요. 근데 나를 달래러 온 (회사) 사람마다 속을 뒤집어놓고 가데요.”(이재훈씨)
“(저도 2018년 아들이 숨졌을 때) 안 싸우면 내가 죽겠더라고요.”(김미숙씨)
2016년 김씨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재훈씨, 김미숙씨도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슬픔 속에서도 거리에 섰습니다. “(누군가)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놓고 돈을” 벌지 못하도록, “사람이 (산재로) 죽으면 (책임자가) 최하 징역형이” 나오도록, 그렇게 “우리 애 죽음을 경고장으로 (삼아) 비뚤어진 세상을 조금 더 바르게”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이재훈씨).
그러나 변화는 더디고 더딥니다. 김용균씨 죽음을 경고장 삼아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법 시행은 2022년 1월로 미뤄졌습니다. 그마저도 처벌 완화, 적용 제한, 시행 유예 등으로 누더기가 돼버렸습니다. 이선호씨가 이 법의 테두리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입니다. 2021년 1~3월 일터에서 죽음을 맞은 노동자 238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숨을 걸고 일터로 향하는 김용균씨가, 이선호씨가 오늘도 있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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