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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LH 단죄, 그걸로 될까요

등록 2021-04-03 05:39 수정 2021-04-04 04:24
1357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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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4호 만리재에서 ‘4년은 평온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2020년 7월30일 국회를 통과했을 때입니다. 세입자 의무만 성실히 이행하면 전월세 계약 기간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자동 연장되고 임대료는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안에서 올리도록 한 이 법의 ‘가치’를 세입자 입장에서 짚었습니다. 국민의힘 반대에도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여 입법을 일사천리로 마무리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직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셋값을 14% 넘게 올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월세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는 관련법을 대표 발의했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임대료를 9% 올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3명과 그 가족들이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에 땅투기를 했다는 사실(LH 땅투기 의혹)이 폭로되면서 불붙은 분노가 결국 폭발했습니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잇따라 터진 대형 악재에 정부와 여당은 허둥지둥 칼을 빼들었습니다. 김상조 실장은 경질되고 박주민 의원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 본부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LH 땅투기 의혹도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전방위로 파헤칩니다. 수사 인력만 1500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궁금합니다. 그렇게 몇 명만 응징하면 정말 해결되는 문제일까요.

대다수 언론이 LH 땅투기 의혹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샅샅이 뒤지는 이때, <한겨레21>은 망원경을 꺼내 들었습니다. 제1357호에서는 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한발 떨어져서 분석하는 세 가지 시선을 다룹니다. 시선①은 1981~2020년 공공택지 개발사를 훑어보며 땅의 공공성이 어떻게 훼손됐는지 살펴봅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저렴한 집값 유도, 공공 자산 축적 같은 시민의 이익은 지속해서 쪼그라들었지만 LH는 수익성 좋은 ‘건설사’로 변신하며 돈을 긁어들였습니다. 1999년 분양가 자율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2004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 개발 때 주거 공공성이 확대됐다면, 2020년 경기도 과천 땅을 민간 건설사에 넘기지 않았다면, 결정적인 순간을 되짚어보며 LH의 존재 이유를 묻습니다.

시선②는 전문가 15명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대다수는 신도시 자체가 투기꾼의 먹잇감이라며 낡은 주택 공급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기 신도시는 투기꾼의 파티장이 됐다. 일시에, 대규모로 공급하는 방식이 문제다. 정부가 잘못한 일은 반성하지 않고 투기한 사람만 잡겠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대안으로는 도시의 저밀도 지역에서 소규모 재개발·증축·리모델링 사업을 제시했습니다.

얻어야 할 교훈과 재발 방지 대책은 시선③에 넣었습니다(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부동산 불로소득이 2019년 352.9조원, 국내총생산(GDP)의 18.4%에 달해 부동산 개발 정보가 있거나 동원할 자금이 있으면 누구라도 불나방처럼 모여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무원이건 투기꾼이건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을 길을 봉쇄하는 패키지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진단과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세입자의 도시(자가 보유 비율 42.7%)인 서울의 시장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세입자 보호에는 관심이 없고 투기꾼이 몰려들 주택 공급 공약만 경쟁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그 누구라도 시장이 되면 서울시 전역이 공사판이 될 우려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

분노는 가라앉고 칼춤은 끝날 것입니다. 그 뒤 불나방은 어떻게 될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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