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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4년은 평온합니다

등록 2020-08-01 06:05 수정 2020-08-03 01:17
1324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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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계약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보증금이 올랐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2년마다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사할수록 작은 집으로 옮겨갔고, 결국 월세로 갈아탔습니다. 10년 이상 홑벌이 하면서 천정부지로 뛰는 전월세 보증금을 따라잡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다가구주택 3층에 사는 지난 5월 전월세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걱정이 앞섰습니다. 집주인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지 않으면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간주하는 ‘묵시적 계약갱신제도’가 이번에 적용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칼자루는 2층에 사는 집주인이 쥐었으니, 그의 집 앞을 지날 때 발소리를 죽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생겼습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7월30일 국회를 통과했으니까요.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표결이 시작되기 전에 본회의장을 떠났지만, 결과는 재석 인원 187명 중 185명 찬성이었습니다. 7월2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29일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쳐 일사천리로 입법이 마무리됐습니다. 법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바로 시행됩니다.

핵심 내용은 전월세 계약 기간 2년이 끝나면 추가로 2년의 계약 연장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입자가 2년 계약이 종료된 뒤 재계약을 원하면 집주인에게 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이 요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갱신 청구가 거부되는 중대한 과실이란 월세 체납이나 주택 훼손 등을 말합니다. 집주인이나 그 가족이 실제 거주할 목적이라면 역시 세입자의 갱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계약 기간 2년만 지나면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는 예전보다 세입자에게 훨씬 유리한 상황입니다. 세입자 의무만 성실히 이행하면 전월세 계약 기간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자동 연장되니까요. 계약 갱신과 관련해 세입자에게 권리가 생긴 것은 1981년 관련 법이 제정된 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는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안에서 올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상한선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더라도 이 원칙은 유효합니다. 기존 전세보증금을 기준으로 5% 증액 제한이 적용되고, 월세로 전환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임대차보호법상 ‘법정 전환율’(10% 혹은 기준금리+3.5% 중 낮은 비율)이 적용됩니다.

6년 전 첫 전월세 계약을 맺고 세 차례 재계약해 2022년 5월에 전월세 계약이 만료되는 저도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된 다음에 맺은 계약이 아니라 지금 세입자부터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는 집에서 제가 원하면 2024년 5월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이 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안감 없이 살 수 있는 4년, 그 평온한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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