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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비상한 상황, 비상한 대책

등록 2021-03-06 10:37 수정 2021-03-08 01:22
1353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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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졸업한 그는 중소기업에 취업했습니다. 한 해 전만 해도 대기업이나 금융권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었는데, 1997년 11월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로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입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초조했고 결국 눈높이를 낮추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마저 망해버렸습니다. 월급을 몇 달 치 못 받고 버티다가 실업자가 됐습니다.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더 젊은 구직자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몇 달만 하겠다며 사교육에 뛰어들었는데, 그는 2021년에도 과외 선생님으로 살아갑니다.

그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극심한 경제 불황 속에 취업난을 겪은 ‘IMF 청년세대’는 대학 졸업 뒤 길게는 12년 동안 고용·소득 감소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결혼·출산율도 떨어져 생애 전반에 깊고 넓은 상처를 남겼습니다.(‘불황 속 노동시장 진입의 장기적 영향: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도출한 증거’, 2020년)

코로나 청년세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IMF 청년세대’와 닮았습니다. 이들은 사회초년생 때 취업 절벽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 청년(18~29살) 가운데 17%가 경제활동을 중단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던 청년 6명 중 1명이 ‘코로나19 실업자’가 된 셈입니다.(국제노동기구(ILO) ‘청년과 코로나19’)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 1월 15~29살 청년 실업률은 9.5%로 전체 연령 평균(5.7%)을 크게 웃돕니다. ILO는 이들을 ‘록다운 세대’(Lockdown Generation)라고 부릅니다.

제1353호에서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여행업 록다운 세대 5명을 만났습니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1년 여행업계에서 일해온 이들은 1년 내내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습니다.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020년 1월20일부터 여행 예약 캔슬(취소) 전화로 몸살을 앓았고, 격주 출근(3월)과 유급휴직(5·6월), 무급휴직(7·8월)을 거쳐 해고(11월) 수순을 밟았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여행사가 비용 감축, 휴직 권고, 정리해고라는 생존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찾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겨우살이를 합니다. 하지만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에, 또 다른 겨울이 다시 불어닥칠 수 있기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갈림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코로나 청년세대가 IMF 청년세대와 다른 생애를 살도록 지금 당장, 전례 없는 규모의 일자리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재정과 세제, 금융, 사회적 대화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비상 상황이니 비상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당연합니다. 때늦은 후회를 또 반복할 수 없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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