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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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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차별금지법 ‘그저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뿐’

등록 2020-10-12 01:00 수정 2020-10-12 10:07

어느새 가을빛이 짙어졌습니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단풍이 고울 것이란 소식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 그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코로나 블루(우울)’의 답답함을 상쾌하게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는 노랑, 빨강, 주황, 청록까지 형형색색의 나뭇잎이 풍성하게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일 겁니다. ‘초록이 동색’이기만 하면 그럴까요. 자연은 제 색깔을 두고 잘났다 못났다, 정상이다 아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본디 그대로’(自然)의 다양성이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것일 테지요.

<한겨레21> 한가위 특대호(1332호)는 차별금지법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알차고 다양한 내용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2020년 6월,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국회에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직후부터 한 달간 의원실에 빗발친 항의, 이런저런 오해와 논란에 대한 ‘팩트체크’, 발달장애아동과 성소수자의 엄마, 농인의 딸, 난민 청소년의 친구들, 트랜스젠더 소설가 등 여러 유형의 차별 피해 당사자들의 간절한 소망, 국제사회의 차별금지법 역사와 현황, 우리나라의 현실, 한가위 콩트와 책 소개까지.

깔끔하게 편집돼 나온 책을 보는 순간, 안도와 기대 한편으로 우려와 조바심이 피어납니다. 차별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했는지, 독자는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번 기획은 6월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된 직후부터 구상했습니다.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원칙 하나면 얼마든지 기사를 쓸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뉴스룸 기자들도 ‘차별의 세상’에 한 발짝 더 들어가는 순간 난감했습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모르거나 헷갈리는 게 많았고, 특집 기사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더 막막했습니다. 공부하고, 이야기 듣고, 의견을 나누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8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여섯 차례 전문가들의 기고도 연속해서 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개를 조금씩 갖춰갔습니다. 뉴스룸 기자 모두 기사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배우고 깨닫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인종차별에 맞서 인권운동을 이끈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1963년 8월)을 돌아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며 사는 날이 올 것이란 꿈입니다. (…) 나의 어린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란 꿈입니다.” 이 연설에서 ‘피부색’ 대신 국적, 성별, 연령, 신분, 종교, 장애인, 학력, 성적 지향, 이주민 같은 말을 써도 그 뜻은 똑같다고 믿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차별은 갈수록 미세해지고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모르는 사이, 우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가 돼가는 건 아닐지요. 한가위 특대호가 “우리는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뿐”이라는 이들과 어깨높이를 맞추는, 작지만 단단한 디딤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제1332호 표지 이야기 차별금지법을 이땅에
http://h21.hani.co.kr/arti/SERIES/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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