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게 하는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다 사주는데” 따위 어이없는 생떼를 시전하게 했던, “오늘은 있나요?” 가게 문을 닳도록 드나들게 했던 요망한 물건들. 가게로 내달리고, (어차피 살 거면서) 짐짓 한 번 더 살펴보고,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마침내 내 것이 된 그것을 만지작대는 모든 순간이 철없이 찬란했습니다. 클릭 몇 번으로 쉽게 듣고, 구하고, 읽을 수 있는 것투성이인 지금이야 그만큼 간절할 물건도 별로 없습니다.
<한겨레21>은 이런 시대에 무려 ‘종이’ ‘잡지’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더 널리 읽힐 좋은 기사 써내는 게 우선입니다. 다만 또한 물건이라서, ‘사람들이 이 잡지 한 권을 간절히 가지고 싶어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솔직히 그런 일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종이 잡지는 위기이니 점점 더 가뭇없을 일입니다. 소설가와 시인 21명의 인터뷰를 담은 통권호 ‘21 WRITERS’(제1326·1327호)가 8월14일 나왔습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보려고 정은주 편집장과 기획자인 구둘래 기자가 애면글면했습니다. “무광 표지라 쥐었을 때 손맛이 좋네요.” 따끈따끈한 잡지를 받아본 서윤희 기자가 이렇게 말할 때 이번만은, 진짜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딘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은, 엄연하니까.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독자 반응을 봅니다. 하나하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한겨레21>을 찾아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사야 하나 싶었지만 마지막 서점에 딱 하나 있는 것을 잽싸게 샀답니다. 서점을 네 번 들른 끝에 문 닫기 직전 잡지를 구한 독자도 있습니다. 어느 동네 책방은 공동 구매해서 함께 읽고 비대면 토론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고마운 정기독자의 글도 보입니다. <한겨레21>을 구독한 보람이 있다고, 코로나19 속 선물 같은 기획이라고 적어줬습니다.
정확한 집계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평소보다 4배 정도 잡지가 많이 팔린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서점에서도 매진 행렬입니다. ‘조기 품절’로 종이 잡지를 구하지 못한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방법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이(e)북은 온라인서점 예스24(http://m.yes24.com/Goods/Detail/91869702)와 알라딘(http://aladin.kr/p/6NcSg)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이런 문장을 쓰는 날이 오다니요.)
인터뷰에 응한 소설가와 시인도 격려해줬습니다. “기자님 분석에 마음이 동해 몇 번이나 읽었네요.”(황유미) “너무 좋았어요. 지인들도 기사 보고 놀랐어요. 너무 잘 쓰셨다고.”(정지돈) “행복한 마음이 들었거든요.”(손보미) “정성이 느껴지는 기사였어요. 기획 자체도 즐겁게 보고 있답니다!”(김초엽) 글 쓰는 작가에 대해 무언가 써내는 일이 면구스러웠던 기자들은 그제야 안도합니다.
“울컥하네요.” 편집장이 말합니다. ‘잘 팔려서 울컥’만은 아닐 겁니다. 세로 26㎝, 가로 20㎝, 글에 대한 글로 빽빽하게 채워진, 도무지 ‘2020년’스럽지 않은 이 물건을 앓아준 게 기적 같고, 고마워서였을 겁니다. 서점을 순례하고 배송을 기다리던 순간, 마침내 내 것이 된 ‘21 WRITERS’를 쓰다듬고, 읽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린 모든 순간이 독자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면 좋겠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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