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3일째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국회에 냈다. 국회는 12일 만에 통과시켰다. 올해 치 본예산안이 통과한 지 석 달 만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추경 11.7조원이 역대 네 번째로 큰 ‘슈퍼 추경’이라며 그 크기로 대응과 처방의 적정성을 웅변했다.
그 규모는 과연 적정했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대통령 입에서도 제2, 제3의 추경이 시사됐다. 부족하다, 더 많은 나랏돈 투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빠르게 얼어붙은 세계경제 상황은 달라진 대응을 요구한다. 추경을 되짚어보는 건 다시 논의되는 추경을 짤 때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추경의 적정성은 경제위기 진단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정확히 알아야 처방약을 제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얼마나 아플지는 미래의 불확실한 영역에 있다. 대강 예측하더라도 예산을 얼마나 쓰냐는 또 다른 문제다. 위기의 경중과 파장이 제일 큰 결정 변수이긴 하나 그에 대응하는 예산은 재정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철학 안에서 계획되고 합의된다. 대개 보수적 재정 운용 경험과 원칙,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은 어떨까?
11.7조원이 역대 네 번째 추경으로 포장돼 반복 재생되는 건 사실 엉터리 뉴스다. 추경 1등은 세계 금융위기에 맞서 2009년 짠 28.4조원, 2등은 박근혜 정부 들어 경기를 띄우기 위해 2013년 편성한 17.4조원, 3등은 한국 경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고통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투입한 13.9조원이다. 굴곡 가운데 경제가 성장한 지난 수십 년의 시간과 돈의 가치 변화(물가)를 무시한 채 명목상 액수를 줄 세운 결과다.
경제규모(GDP)와 나라살림(1년 치 본예산) 크기의 변화와 맞물린 추경의 적정성을 따져보면 역대 네 번째는 터무니없는 셈법이다. 이번 추경은 2015~2017년 매년 11조~11.6조원씩 편성한 추경 규모와 비교해 특별할 게 전혀 없다. 되레 계속 커져온 나라살림이나 경제규모에 비춰보면 옹색하다. 1년 치 나라살림(본예산 기준이되 2004년 이전은 결산 기준)에 견줘 추경 규모는 1998년 12%, 2009년 10%, 2013년 5%다. 순위는 명목 금액으로 매겼을 때와는 달라진다. 추경만 놓고 봤을 때 외환위기를 맞아 실질적으로 가장 과감하면서도 많은 나랏돈을 쏟아부었고 그다음이 세계 금융위기 때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월17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 11.7조원은 올해 본예산에 견줘 2.3% 수준이다. 2015~2017년의 그것(추경/본예산, 2.7~3.1%)보다 되레 낮은 수준이다. 과거와 지금의 경제규모 차이를 반영해 추경을 따져보더라도 왜소하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뜻하는 국내총생산(명목GDP 기준) 대비 추경의 크기는 대략 1998년 2.6%, 2009년 2.4%, 2013년 1.2%다. 그에 비해 올해 추경 11.7조원은 0.6%(2019년 명목GDP 대비)에 그친다.
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코로나 불황’에 맞선 미국의 경기부양책 규모는 약 1조1083억달러(이 중 1083억달러는 의회 통과)로 국내총생산에 견줘 대략 5%가 넘는다. 우리나라(약 0.6%)의 거의 10배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130만원씩 ‘재난기본소득’ 지급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도, 이를 포함한 2차 추경도 확정하지 못했다.
보수적 재정 운용의 도그마에 짓눌려 나랏돈을 적정하게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바이러스에 꺾인 경제의 회복 시간만 늦출 뿐이다. 보수적 재정 운용, 때에 따라 재정건전성, 국가채무의 국내총생산 대비 ‘40%룰’, 긴축재정, ‘작은 정부론’ 등으로 표현되거나 주장되는 익숙한 이념에서 이제 탈피할 때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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