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폭염 기사는 4월께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서 싹이 텄습니다. 당시 산업시설 미세먼지 배출량 조작 사건을 취재하러 국회에 들렀다가 녹색연합의 황인철 정책팀장을 만난 겁니다. 일 끝나고 잡담하다 황 팀장이 그러더군요. “올여름엔 사람을 중심으로 폭염을 측정해보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온도계를 차고 다니면서.”
촉이 딱 왔습니다. 이거다! 2018년 극한 폭염을 겪고도 변함없는 일터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실제 겪는 폭염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거 저희랑 같이하시죠.”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습니다. 녹색연합이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 운영을 맡았습니다. 은 참가자 섭외와 인터뷰, 기사화를 맡았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과학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5월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채여라 박사를 만났습니다. 자문을 구하려고 만났는데 ‘워낙 기획이 좋다보니’ 또 의기투합이 됐습니다. 이렇게 세 기관이 한배를 탔습니다.
일이 커졌습니다. 30명쯤 모아서 간단히 하려 했는데 참가자가 어느새 130명을 넘었습니다(일부는 중도포기). 많은 분이 ‘기획이 좋다’며 흔쾌히 참여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2018년 폭염’의 후광이지 싶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일이 술술 풀릴 땐 몰랐습니다. 날씨는 함부로 예측하는 게 아니라는 걸. 7월 한 달 내내 비바람이 불었습니다. 제 얼굴에도 먹구름이 꼈습니다. ‘제발 다음주는 더워져라’ 빌다가도 ‘폭염 오면 노동자들이 고생하는데’라며 자책하다가도 ‘기사 망하게 생겼는데’라며 초조해했습니다. 날씨처럼 제 마음도 하루에 열두 번씩 해가 났다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모니터링 기간인 2주(7월22일~8월2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참가자분들이 먼저 “올해는 폭염이 안 와서 좋긴 한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8월9일까지 일주일 연장했는데 제9호 태풍 ‘레끼마’가 왔습니다. 바람 부는 창밖을 내다보며 해탈이란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결국 2018년 여름처럼 ‘드라마틱한’ 결과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취재하며 만난 폭염 속 노동 현장의 디테일(구체적 상황)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누가 뜨거운 H빔과 알폼 위에서 가장 고생하는지, 정부의 폭염 대책은 왜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지, 배달 기사 같은 ‘개인사업자’들에게 “쉬엄쉬엄하라”는 말이 왜 허망할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더 취재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소복이 쌓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올해도 작년 못지않게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폭염 모니터링 참가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가자 중에선 “한파가 올 때도 모니터링 기획해주세요”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올겨울은… 추울까요?
변지민 기자 d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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