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젖먹이. 총알이 빗발쳤지만 품에 안은 아이를 놓지 않은 엄마의 손. 아이는 온기를 잃은 엄마의 만신창이가 된 배 밑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이는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핏물과 빗물에 스며든 탄약 가루가 눈에 흘러 들어간 탓인지 양쪽 시력을 잃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입은 상처 때문에 다섯 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했다.
1966년 12월6일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 안프억 마을에서 6개월 된 도안응이아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의 시작이었다. 그날 엄마 응우옌티까이, 누나 도안티홍, 할머니 응우옌티텀을 잃었다. 다섯 살 위 형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아홉 살 많은 누나가 두 동생을 키웠지만 고구마처럼 생긴 콰이미로 끼니를 때우거나 굶주리는 날이 허다했다. 응이아는 학교 근처도 가지 못했다. 장애 탓에 일도 할 수 없었다. 응이아는 어릴 적 다친 상처로 아직도 몸이 아프고 쑤신다.
53년 전 그날 총을 든 군인들은 응이아와 그 가족, 마을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응이아의 삶은 이번호(제1256호) 표지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학살 피해자들의 청원서’에 서명한 응이아를 포함한 103명은 한국군 베트남 파병 기간 민간인 학살 피해자 9천 명 중 일부다.
큰외삼촌은 동네에서도 소문난 효자였다.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뒤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지만 농사일을 제대로 못하는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쌀 세 가마에 머슴살이도 자처했다. 큰외삼촌은 백마부대 입대 뒤 대위와 선임하사로 군 복무 중이던 동네 친구들을 따라 베트남으로 갔다. 이유는 딱 하나, 돈을 벌기 위해서다. 사격을 잘해 1등 사수로 불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 가을 어느 날 외가 마당은 추수 타작으로 분주했다. 하필 그때 우체부가 들고 온 전사자 통지서로 온 집안이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했다.
생포한 북베트남군들과 이국적 배경을 뒤로한 채 군복 입고 찍은 큰외삼촌의 흑백사진은 외갓집 안방에 걸렸다. 어릴 적 본 그 사진은 큰외삼촌에게 동경을 갖게 했다. 23년 뒤 나는 큰외삼촌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각각 연대장과 사단장으로 있었던 부대란 부끄러움은 파병 부대란 은근한 자긍심으로 덮였다.
그 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중학교 때 인근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단체 관람했던 영화에서 그려진 베트남 파병 부대 영웅담의 영향일까, 아니면 제도권 교육 때문일까.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이렇게 써 있긴 하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다. 1964년 외과 병원 인력 및 태권도 교관단 파견에 이어 1965년 전투병이 파견되었다…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다.” 국위 선양과 승전의 서사와 함께 대중의 기억 속 베트남 파병은 한국 경제의 기적을 성취하는 마중물로 자리매김돼 있다. 시간이 흘러 할롱베이, 이주여성, 한류, 해외 투자처, 박항서 등으로 베트남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다양하게 파생됐으나, 승전과 경제 발전 서사의 축은 아직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과 도안응이아의 기억은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응이아가 3월7일 서명한 청원서에 담긴 피해자들의 요구는 세 가지다. 진상조사와 사실 인정, 공식 사과와 선언, 피해 복구를 위한 조치. 아직 이 가운데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응이아도 청원서에 서명하면서 한국 정부에 “조금이나마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길” 바랐다.
큰외삼촌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혔다. 진상조사가 되지 않았으니 그가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책임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가 살아 있다면 피해자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 또한 참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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