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소식을 들은 지 며칠 지났을 때다. 잠시 눈을 의심했다. ‘최저시급+1천원’. 75m 높이 굴뚝에서 426일의 고공농성과 6일의 단식 끝에 살아서 내려온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가 따낸 임금 수준이라니. 고용도 보장받았지만 ‘최소’란 조건이 붙은 3년짜리였다. 씁쓸했다. 최저시급 8350원, 거기에 시간당 1천원을 더 얹는다는 게 누군가에겐 얼마나 절박한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야권 대선 주자 가운데 1위를 달리는 그의 ‘첫 정치 행보’였다.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1월15일)이라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정부가 시장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해 시장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우리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하자 결심을 굳혔단다. 이 어설프지만 오래된 삼단논법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출사표를 던진 그의 절박한 이유가 최저시급이라니, 놀랍다.
황 전 총리가 나라 구하기에 뛰어든 또 다른 출발점은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주52시간제(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가 시장의 뿌리를 뒤흔들어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한다.
‘빨리빨리’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만큼은 ‘오래오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여섯 가입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장시간 노동 3위다. 노동자 1인당 연간 2024시간에 이른다. 얼마나 많은지 다른 나라를 보면 안다. 독일은 1356시간, 프랑스는 1514시간이다. 법적 기준이 되는 주당 노동시간은 독일이 35시간인데, 지난해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28시간제를 시행한다. 그에 맞춰 연간 일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황 전 총리의 논법대로라면 독일의 시장경제는 뿌리가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진작 뽑혔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경제는 그가 여의도에 등판하면서 갑자기 내세운 가치가 아니다. 몸속 깊이 새겨 있다. 그는 6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지켜내야 할 ‘바른 가치’로 시장경제를 꼽았다. 그가 말하는 시장경제는 대한민국 “자유 우파” 대다수가 그렇듯 구호로는 선명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념이라고 하기엔 좀 옹색하고 어설프다.
지난해 11월30일 서울대 금융경제 세미나에서도 ‘황교안식 시장경제’가 표현됐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자율적으로 해결되는 게 원칙인데, 시장경제의 본질적 내용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가선 안 된다.”
그런데 수상하지 않은가.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을 기업에 맡기자는 건지, 아니면 고용주와 노동자의 자율적 협상으로 결정되는 게 맞다는 건지. 속내는 어차피 알 수 없고, 후자라면 제도 취지나 역사, 다른 나라 실정을 살펴봤을 때 맞지 않는 얘기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률 전문가인 그가 그리는 시장경제는 우리 헌법과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헌법 제119조 1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면서도 2항에서 다음과 같이 경제민주화를 천명하고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앞에 애초 ‘법정’이 붙는다. 법적 강제성을 갖는 제도를 자율적 해결에 내맡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제119조 2항에서도 ‘국가의 규제와 조정’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정작 그의 과거는 시장의 자율과도 충돌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 에스케이(SK), 엘지(LG), 롯데 등 재벌들과 뒷거래를 한 혐의 등으로 헌정 사상 처음 탄핵됐는데, 그때 그는 국무총리였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자율, 시장경제의 실체가 뭔지 궁금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낡은 시장경제 프레임을 다시 들고나온 건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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