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한 양꼬치 집에서 시작됐다. “너랑 한종선씨랑 동갑이네.”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이자 형제복지원진상규명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인 여준민씨가 맥주잔을 채우다 말했다. 한종선, 2012년 국회 앞에서 처음으로 1인시위를 하고, 책 를 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다. 막연히 형제복지원 사건은 먼 옛날, 나랑 상관없는 어떤 사람들이 당한 비극인 줄 알았다. “동갑.”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내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호돌이를 그릴 때, 종선씨는 갇혀 맞았다.
막연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이 ‘49통일평화재단’ 지원으로 지난해 8월 ‘한국 사회 배제와 감금의 역사-수용소를 중심으로’ 연속 강좌를 열자, 속기를 맡았다. 타자 빨리 치기는 자신 있었으니까. 강좌를 듣다보니, 형제복지원은 박인근이라는 한 ‘악마’가 만든 지옥이 아니었다. 선감학원, 서산개척단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후 수십 년간, 국가는 ‘부랑인’이란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고아·빈민·구두닦이·껌팔이 등을 ‘비국민’으로 분류해 가두고 굶기고 때리고 죽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엔 이를 치적으로 홍보했다. 왜 홍보거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과 다르다는 ‘우리’의 무관심과 암묵적 동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그 강좌에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김성환씨를 만났다.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청송교도소로 이어지는 삶을 더 듣고 싶다고 했다. 김성환씨와 둘이 처음 선감도에 가기로 한 날, 친구며 가족들이 걱정했다. “그 사람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에도 불안이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정성을 다해 솔직하게 말해준 김성환씨를 나는 이런 태도로 대했다. 내가 누구의 편견을 비판할 수 있을까? 매순간 그런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내야 했던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이혜율씨, 서산개척단 피해생존자 정영철씨, 정화자씨까지 인터뷰하면서도 자주 마음의 짐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다 나온 이야기다. 기사가 안 될 거 같다.” 전정윤 기자를 괴롭혔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2012년부터 피해생존자들과 함께한 여준민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떻게 계속해?” “많이 나가떨어졌지롱~.” 그는 항상 돌아왔다. 15살에 서산개척단에 끌려간 이정수씨는 조카라 부르는 이가 20명이 넘는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 여전히 살고 있는 개척단원 11명을 그는 형님, 누님으로 돌본다. 일제강점기부터 아이들을 잡아 가둔 선감학원의 실상을 정진각 안산지역연구소 소장은 20여 년간 홀로 파헤쳤다.
형제복지원은 실상이 드러난 1987년에도 폐쇄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재단은 1989년 1월까지 부랑인 수용시설을 유지했다. 이후 재단 이름만 바꿔가며 중증장애인 시설을 운영했다. 부산시가 법인 취소 결정을 내린 건 2015년이다. 진상을 밝힐 특별법은 무산됐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은 계류 중이다. 그러니 ‘수용소 잔혹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운이 좋아 ‘국민’이었던 나는 그들의 고통에서 고개 돌리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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