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에 대한 탄핵을 보고 싶다. 너무 과격한가.
분명 모든 국민은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법관에 의한 법률에 의한 재판 말이다. 이 헌법적 권리는 재판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법관의 신분 보장 없는 재판 독립은 헛말이다. 그래서 법관 탄핵은 거칠게 들릴 수 있다. 잦은 탄핵으로 법관의 신분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서다. 궁극적으로 재판의 독립성 침해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마저 훼손될 여지 또한 있다.
그런데 한번 달리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법관은 3천 명이 넘는다. 사법시험이나 로스쿨을 나온 자타가 인정하는 엘리트들로 충원된다. 주로 검사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임용된다. 주관적 경험이지만, 2000년대 초반 3년 남짓 법조 기자를 하면서 만난 판사들은 평균적으로 검사들보다 법률적 전문성과 품성, 태도가 나아 보였다. 그래서 검사보다 법관을 더 신뢰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사실이 있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 동안 탄핵된 법관은 단 한 명도 없다. 그사이 대통령 탄핵이 두 번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의외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않는다. 탄핵은 법관 파면의 주요한 수단이다.
헌법 제65조는 법관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법관 탄핵은 사라진 공룡처럼 화석화되었다.
마흔여덟 앨런 러프리는 미국 최고 엘리트 법관 가운데 한 명이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형법 등을 공부한 그는 2003년부터 서버지니아주에서 최고법원 재판연구관, 법무부 차관보 등을 했다. 연방하원의원 특보, 주지사 보좌관 등으로도 활약했다. 2012년부터 주 최고법원 법관으로 있다가 지난해 최고법원장이 되었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다른 주 최고법원 법관 세 명과 함께 주의회에서 탄핵소추됐다.
부패, 무능, 태만, 중대 범죄, 경범죄 등이 혐의로 적시됐다. 뜯어보면 이렇다. 주 의사당에 있던 미국 건축가 캐스 길버트가 쓰던 책상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고, 주 자산인 컴퓨터와 관용차를 사적 용도로 썼다. 또 선임 법관들에게 보수를 과다 지급하고 3600만원짜리 고급소파를 사는 등 개인 사무실 개·보수에 4억원 넘는 주 예산을 지출했다. 탄핵 절차를 밟던 중 러프리 법관은 11월12일 사임했다.
탄핵은 영국에서 기원했다. 14세기 국왕이 임명한 장관을 견제하기 위한 의회의 수단에서 연유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탄핵의 최초 사례는 1797년에 나왔다. 이후 연방 의회에서 탄핵은 약 60차례 시도되어 이 가운데 19건이 상원으로 넘어갔다. 하원이 과반 의결로 탄핵 소추하면 상원에서 3분의 2의 동의로 가결된다. 탄핵안이 상원에서 가결된 건 8건뿐이었다. 220년 동안 이뤄진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상원에서 다뤄진 탄핵안의 80%, 이 가운데 가결된 탄핵안의 100%가 법관 탄핵이었다. 주정부 사례에서 나타나는 특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고위 공직자 탄핵 하면 닉슨이나 클린턴 대통령이 떠오르지만, 사실 법관 탄핵 제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역죄, 뇌물 수수 또는 다른 중범죄와 경범죄. 미 헌법 제2조에 나와 있는 탄핵 사유다. 반면 우리 헌법에선 “헌법이나 법률 위배”로 그 사유가 더욱 막연하다.
‘재판 독립 침해 행위’. 최근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여섯이 ‘사법 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들의 탄핵 소추를 결의하자고 제안하면서 낸 탄핵 사유다. 때마침 검찰이 11월1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30여 개 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관들이 어떻게 재판에 개입했는지, 탄핵 사유를 좀더 구체화해줬다. 재판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오랜 법관 탄핵 반대 논리가 탄핵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이유로 등장한 현실은 병든 사법부의 모습을 비춘다.
이제 탄핵소추권을 쥔 국회가 움직일 수 있을까. 삼권분립 원칙과 상호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칙에 뿌리를 둔 법관 탄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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