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일, 손바닥문학상 대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하자, 정재희(50)씨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듯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3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4기 암 환자로 지난해부터 경북 경주에 있는 한 요양시설에서 병과 싸우고 있다. 정씨는 그곳에서 “저녁에 한두 시간씩 일주일 동안, 1년의 시간을 기록해”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했다.
정씨는 암 환자들의 힘겨운 생활을 담담한 어조로 써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백하게 곱씹는 논픽션의 울림은 컸다. 은 치병 중인 정재희씨를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_편집자
서면 인터뷰를 한 정재희씨가 “지난해 요양시설에 들어가기 전 여름에 찍은 것”이라며 <한겨레21>에 보낸 사진이다. 정재희 제공
11월이 되면서 지난 1년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멀어지고 잊히는 것이 아쉬운 순간들, 그 순간의 느낌을 적고 싶었다. 게으르다보니 쓰도록 부추기고 마감을 정해주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손바닥문학상 공모 광고를 봤다. “소외된 것, 사라져가는 것, 잊혀져가는 것. 세상의 모든 것은 기록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감 열흘 전에 공모 광고를 봤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그 안에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목도 정해놓고 쓴 건 아니었는데 원고 보낼 때 문득 생각나는 대로 정한 것이다. 사람들이 경주 하면 유적지나 관광지를 많이 떠올리는데, 난 그런 경주와는 완전히 다른 경주에서 살고 있다. 뒤늦게 ‘제주도에서 1년’ ‘경주에서 1년’과 같은 제목에서 ‘즐거운 유랑의 도시 같은 느낌이 나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질문은 아직도 너무 어렵다. 이 질문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간혹 드물게 용기가 날 때면 나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답을 얻진 못했다. 이 질문을 마주하기엔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저 사람이 내 죽음을 상상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를 아끼는 사람은 나를 살리기 위해 애쓰지, 내 죽음을 상상하면서 감상에 빠져들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 만난 사람은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만난 사람 중에 김주완씨라는 분이 기억에 남는다. 신장암 4기였다 완치되신 분인데 ‘주마니아’라는 이름의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치유 사례를 암 환우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그분의 치병 자세에서 패기를 느꼈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암 진단을 받은 환우들이 병을 다스리기 위한 조언을 받기 위해 만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고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많은 카페에서 암 환우들이 “죽음을 학습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암 환우와 관련된 많은 인터넷 카페들에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죽음을 학습하는 과정이라는 표현에 깊이 공감했다.
(감정을) 절제했다기보다 내가 자기연민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이 지나고부터 간혹 떠오르는 이미지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한 여자가 후줄근한 후드티에 빛바랜 청바지를 주로 입고 다니며 남의 담배가게를 봐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나 명예를 갖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인물 같지는 않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재도 불안정할 수 있겠는데, 이 여자는 그로 인한 불안과 불만족에 잠식되지 않는 사람 같다. 웃음기는 딱히 없는데 눈길은 차분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된 소들을 살처분하지 않고 돌보는) 책 의 소치기처럼 차마 소를 버려두고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를 떠올리다보니 이 사람이 내 마음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삶일지 모르지만 이 페르소나를 따라 살아봐도 좋겠다 싶다. 암 환자에겐 낫는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앞날은 늘 불확실하겠지만 온몸에 힘을 빼고 느슨하게 움직이고 싶다. 아직 그런 친구는 없지만 때때로 친구의 담배가게나 옷가게를 봐주면서 가볍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손바닥문학상 마감 시간이 임박해 교정도 보지 못하고 원고를 보냈다. (가족에게) 글을 보냈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상 소식을 전하니) 가족이 많이 놀라고 기뻐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수상 소식을 듣고 “대상이 가작보다 좋은 상이야? 상금이 얼마야?” 하고 묻더니 “상금을 나누자”고 한다. (웃음)
노트북을 사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과 선물도 사주고 싶다.
아들과 함께 시상식에 가고 싶다. 올해는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도 많았고, 아들에게 엄마로서 해준 게 없다. 함께 상을 타는 게 올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살아가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과 관련된 논픽션을 쓰고 싶다. 난 픽션보다 논픽션을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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