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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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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21

등록 2017-10-31 13:50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0월17일 사무실에서 급한 잡무를 마치고 KTX를 타고 전북 전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나야 할 분들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지역의 동네책방을 찾아가 독자님들을 뵙는 기획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사람은 강대성 출판마케팅부장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가 처음 제시한 기획안의 제목은 ‘소심한 간담회’였습니다. 아마 저희가 처음 방문한 동네책방이자 제주 지역의 유명한 동네책방인 제주 ‘소심한책방’의 이름에서 착안한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소심한’이라는 단어에 꽂힌 고경태 출판국장이 “한번 해보자”고 적극 동의했고, 그 결과 두 달 전쯤 기자들이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타고 음식 배달을 나가는 (나름 장안에 화제가 된) 포스터를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님들도 잘 아시다시피 은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 있습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 불거진 ‘표지 사진’ 논란과 전임 편집장의 ‘덤벼라 문빠’ 사태로 2천 명 넘는 독자님들이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안 그래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에 이는 결정적인 타격이었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국가정보원과 관련한 여러 특종 기사를 쓰고, ‘김미화의 적폐 청산’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와 같은 대중 강연을 열고, 재미있고 웃긴 기사와 칼럼, ‘탈핵 통권호’ 등을 쏟아내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식어버린 독자님들의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난 5월 사무실에 한창 항의 전화가 빗발칠 때 한 독자님께서 해준 말씀이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뉴스 콘텐츠를 공짜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주간지는 보는 게 아니라 봐주는 것인데, 우리를 이렇게 실망시킬 수 있는가.”

1시간40여 분 만에 도착한 전주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전주의 예술인 거리인 서학동을 찾았습니다. 어둑해진 거리 한켠에 자리한 전주의 동네책방 ‘조지오웰의 혜안’의 가녀린 불빛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점에는 30명 정도 되는 시민분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 소개를 드리고, 말씀드릴 주제인 ‘아베 정권과 한-일 관계’에 대해 40분 정도 얘기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독자님들과 여러 얘길 나눴습니다. 지난 5월 사무실에 두 차례 항의 전화를 걸어오셨던 여성 독자님께서 “이제 그만 설명해도 괜찮다”고 거꾸로 저를 위로해주실 때 살짝 ‘울컥’했습니다. 아베 정권과 한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드 문제는 왜 저렇게 되었나, 편집장은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이 분단된 것인가. 언론학과 국제정치학을 넘나드는 우리의 소심한 수다는 2시간 정도 이어졌고, 끝날 무렵엔 오히려 제가 힐링된 듯 상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간담회를 마친 뒤 서점을 방문한 고등학교 선생님 10여 분과 근처 닭볶음탕집에서 함께 저녁도 먹었습니다.

이튿날, 서점 사장님께서 짧은 톡을 보내주셨습니다.

“작은 마을에서부터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구독운동 펼쳐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성과가 좋으면 나중에라도 막걸리 한잔 나누시죠.”

며칠 전엔 ‘적폐 청산’ 강의를 마친 뒤, 강의실 문밖에서 수강생들께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어느 독자님께서 ‘후원금’이라며 봉투를 하나 놓고 가셨습니다. 중간 부분이 반으로 접힌 하얀 봉투엔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다시 그만 울컥….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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