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휘발되고 고통은 각인된다. 행복했던 일은 금세 잊힌다. 대신 고통은 아주 오래 저장된다. 행복의 순간엔 고통을 상상하지 않지만, 고통의 순간마다 우리는 행복을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행복을 갈망했던 고통의 시간을 삶의 결결마다 채우며 살아간다. 언제나 기억은 고통을 향해 한발 더 기울어 있다.
매주 80여 쪽에 담기는 모든 글을 일일이 검토할 때마다 혼자 묻는다. 너무 어둡고 무섭고 절망스런 이야기들 아닌가. 수많은 고통의 기억으로 충분히 힘든 독자들이 과연 이 기사를 읽어줄 것인가. 쓰린 글 무더기를 안겨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미국의 격월간지 는 나의 근심을 조금 덜어주었다. 이 매체는 지난해 4월 ‘왜 나쁜 소식(bad news)이 좋은 기사(good news)인가’라는 글에서 “나쁜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을 피하려는 인류의 진화 결과, 긍정적 정보를 취득하는 것보다 부정적 정보를 얻는 것을 사람들은 더 선호한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가 인용한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007년 자료를 보면, 20년 동안 미국인들이 집중해 읽은 뉴스는 전쟁, 인적 재난, 천재지변 등에 대한 것이었다. 가십·오락·흥미를 다루는 ‘타블로이드성 뉴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한참 낮았다. 세간의 편견과 달리 유희성 뉴스는 (적어도 뉴스 가운데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셈이다. 다만 ‘배드 뉴스’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소외·참상·부패 등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한 사람들은 냉소와 무기력에 빠져든다. “내가 왜 투표해? 어차피 세상은 지옥인데. 아무 도움도 안 돼.”
이에 착안해 오직 ‘굿 뉴스’만 보도하는 매체도 있다. 인터넷언론 가 대표적이다. 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뉴스레터 ‘낙천주의자들’(The Optimist)을 매주 발행하고 있으며, 도 ‘굿 뉴스’ 섹션을 따로 운영한다.
그런데 이들의 ‘굿 뉴스’는 가십과 거의 아무 상관이 없다. 지난 6월16일 오후, 미국판 ‘굿 뉴스’ 섹션의 머리기사는 올랜도의 어느 주방장이 펄스 총기사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수천 끼의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 일을 다뤘다. 고통을 직시하되 참여와 연대로 세상을 개선시키는 노력이 바로 ‘굿 뉴스’다. 예컨대 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바글시민 와글입법’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 ‘20대를 부탁해’ 등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이며, 대단히 의도적으로 추진되는 ‘한국적 굿 뉴스’다.
그럼에도 ‘굿 뉴스’가 ‘배드 뉴스’의 대안인 것은 아니다. 는 ‘굿 뉴스’의 범람을 경고한다. 기사를 통해 안일한 위로만 유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통의 바탕인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배드 뉴스’가 진정한 ‘굿 뉴스’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배드 뉴스’는 나쁜 사람들이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우리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고통을 직시해야 행복을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하는 자만이 고통스런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이번호는 자문했다. 우리는 충분히 많은 ‘배드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가. 우리는 나쁜 일에 충분히 많이 주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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