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총선 무렵, 어느 정당에서 보고 겪은 일을 잊지 못하겠다. 10여 년 전 일이니,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발뺌해둔다.
공천받으려는 이들이 하루 네댓 명씩 기자실을 돌며 인사했다. 법조인, 교수, 의사, 사업가, 기자, 당 관료 등이었다. 공천 경쟁은 ‘잘나가는 전문직’ 간의 경쟁이었다. 이력을 살펴보면, 공부 안 하는 교수, 정의·인권과 담쌓은 변호사, 부동산 투기로 떼돈 번 사업가, 좋은 기사 써본 적 없는 기자 등이었다. 어디서 이런 것들만 튀어나오나 싶었다. 그나마 낫지 싶은 인물은 여지없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누구보다, 예상보다, 질기고 독한 이가 공천을 따냈다.
이후 오랫동안 ‘의회 냉소주의자’로 지냈다. 한국 정치의 공천·선거 시스템 아래서 좋은 국회의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 막스 베버의 를 다시 읽으며 그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사회학자이자 정치평론가였으며 국회의원 낙선 경험까지 있는 막스 베버는 숨지기 직전 해에 이 책을 출판했다. 저술을 관통하는 두 개념이 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다.
신념윤리는 내면의 열정과 양심이다. 책임윤리는 적절한 수단을 찾아 그 가치를 구현하는 능력이다. 종교인에겐 신념윤리만 있으면 된다. 독야청청하면 된다. 정치인은 책임윤리까지 겸해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되뇌면서 아무 일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그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정치는 밥벌이가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 소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목격했던 것은 신념윤리는 희박한데 책임윤리(라기보다는 그 껍데기인 야심)만 충만한 정치인들이었다. 수단·방법에 능숙하여 반드시 목적을 구현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가치, 즉 신념윤리는 경우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제20대 국회라고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의회는 우경화됐고, 집권 보수정당은 극우 편향에 매달려 있고, 야권은 경제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로 분열했고, 진보정당은 수권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의회 냉소주의자’로선 여소야대라고 좋게 봐주는 세평을 납득하지 못하겠는 것이다.
다만 비관 속에서도 낙관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베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좌절하지 않을 정치인, 그리하여 악마를 물리치겠다는 양심(신념윤리)을 갖춘 정치인,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정치인, 그리하여 악마를 물리치는 수완(책임윤리)을 익힌 정치인, 그 유능함으로 정당을 장악해 대중에 복무하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씨앗을 캐내보려 한다.
‘어디서 이런 것들만 정치판에 등장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은 정치공학만 강조하는 정치기사다. 그것이 냉소를 양산한다. 이제 우리는 냉소를 갈아 정치혐오를 토해내는 비관의 맷돌을 버리고,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선순환 구조를 길어올리는 낙관의 물레방아를 돌려보려 한다.
연속기획 ‘20대를 부탁해’는 국회의원 개개인을 호명하여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검증하고 독자의 관심과 감시를 촉구하는 새로운 정치 인터뷰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font color="#C21A1A"> spring@hani.co.kr</font>로 보내주시면 주무 담당인 서보미 기자에게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소명의 정치를 구현하는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길을 찾는 게 언론의 소명 아니겠는가.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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