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나면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남쪽을 향할 것이다. 도로는 설·추석 귀향길의 곱절 이상 막힐 것이다. 폭격이라도 시작되면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차를 버리고 무작정 걷는 이가 속출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투기와 미사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광주 또는 대구에서 잠시 전황을 파악한 뒤, 목포 또는 부산까지 내려갈 것이다. 체육관 등에 차려진 피란 캠프에서 배급식량에 기대어 몇 주 지낼 것이다.
난리 통에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믿을 것은 제 자신뿐. 이제 ‘피란의 계급 격차’가 드러난다. 자동차가 없어 수도권조차 벗어나지 못한 빈곤층은 이미 전쟁 초기 사망자의 대부분을 이뤘다. 이제 최남단 도시에 도착한 중산층을 노리는 브로커가 창궐할 것이다. 항공권·비자 등을 구하려다 누군가는 돈만 뜯길 것이다. 그 와중에도 대단한 부자들은 일등석을 잡아 일본으로 미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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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돈이 없는 이들에겐 바다가 남아 있다. 대마도까지 밀입국하는 루트가 열릴 것이다. 일본 해경을 피하려면 야음을 틈타야 할 것이다. 배가 뒤집히면 개죽음을 맞을 것이다. 너울에 밀려온 아이의 주검이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에서 발견될 것이다.
가끔 때늦은 소식을 들을 것이다. 군대 간 아들은 어느 전선에서 죽었다. 꾸물대던 고등학교 동창은 폭격으로 죽었다. 몇 집 건너 하나꼴로 물 한 대접 놓고 조문객 없는 상을 치를 것이다. 곡은 끊이지 않고 원한은 깊어질 것이다.
일본과 미국은 한국 난민의 수용을 두고 논쟁할 것이다. 일본 대마도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난민 캠프가 들어설 테고 한국인들은 철조망에 갇힐 것이다. 캠프를 벗어나도 공포는 계속된다. 반한 정서가 극에 달한 일본에선 집단 테러가 일어나고, 남·북한을 구분 못하는 미국인들도 ‘혐한 린치’를 일삼을 것이다. 앞으로 어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
전쟁을 서술한 역사책의 1장은 곧잘 ‘원인과 배경’을 서술한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역사책은 나라 간 긴장, 왕조 간 원한, 우발적 암살 등을 서술한다. 한국전쟁에 대해선 좌우 대립, 국지 충돌, 미-소 관계 등을 한참 설명한다. 명분을 내세운 한판 게임의 방식으로 전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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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술은, 언론계 속어를 빌리자면, ‘리드(도입 문장)가 잘못되어 야마(핵심)를 설명하지 못하는’ 글이다. 전쟁의 역사책 1장에 등장해야 할, 전쟁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누가 얼마나 죽었는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군인 2400만 명이 죽고 민간인 5천만 명이 죽었다. 한국전쟁에선 군인 50만 명이 죽고 민간인 230만 명이 죽었다. 최근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의 전체 사망자 85%가 민간인이다.
기자이면서도 남북 관련 분석 기사를 볼 때마다 갈증이 난다. 핵실험을 했다는데, 대북방송을 하겠다는데, 그 스피커를 조준사격하겠다는데, 그 원점을 정밀타격하겠다는데, 그러면 밀고 내려오겠다는데, 뭘 어째야 그 지경을 막을 수 있을지, 기사에는 답이 없다. 정작 기사를 찬찬히 읽어봐야 할 권력자들은 분석보다 욕망에 이끌린다. 빌미는 적이 제공했고 자신은 ‘정의로운 방어전’을 치른다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은 계급적이다. 정치인은 죽지 않는다. 평범했기에 전선에 끌려온 젊은이들이 죽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은 전장에 쏟아진 탄피만큼 죽는다. 죽음을 피하려 해도 부자들만 떠난다. 떠나본들 세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난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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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정권이 무얼 얻으려는지 특집 기사에서 분석했다. 그 귀결에 대해선 표지이야기에 실었다. 남북 정권 간 ‘게임’의 미래는 시리아에 있다. 정의를 서로 주장하다 전쟁을 벌이니, 무고한 이들이 그 땅에서 죽거나, 탈출하다 죽거나, 난민이 되어 죽지 못해 산다. 그게 나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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