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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실린 역사 연재물 ‘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72~74쪽)은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2차 세계대전 뒤 진행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제시했던, 유명한 ‘악의 평범성’ 테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학 분야의 최근 연구는 아렌트가 주장했듯이 아이히만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대한 기계의 한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뼛속 깊이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반유대주의자이며 능동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음을 보여준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당대의 지성 아렌트가, 1906년생 동갑내기인 아이히만의 법정 ‘연기’에 한마디로 속았다는 얘기다. 현 정부의 권력 상층부를 꿰찬 핵심 인사들이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일깨우려는 데 필자의 숨은 뜻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악의 평범성’ 테제가 이름 없는 수많은 대중이 별다른 저항이나 의문조차 없이 자신을 나치 정권의 거대한 범죄행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비밀은 무엇인지를 파헤치려는 비판적 성찰의 산물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극단주의적 일부 광신도가 아니라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언제든 국가나 체제가 교묘하게 가하는 폭력에 순응하는, 온순한 ‘범죄수행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국가폭력과 체제폭력에 맞서 항상 비판적 이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소중한 까닭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통치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집단을 향해 물리적 폭력과 극단적 혐오를 뱉어내는 퇴행적 흐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잘못이나 범죄행위를 저지른 개인이나 일부 집단을 상대로 ‘과도한’ 저주나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쏟아내곤 하는 분위기에 우리 사회가 맥없이 휩쓸려가는 현실 또한 한 번쯤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4살 아이를 폭행하는 끔찍한 장면이 공개돼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해당 교사는 어떠한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엔 너무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다만 그 정당한 분노의 불씨가 해당 인물의 개인정보를 경쟁적으로 파헤친다거나 하는 식의 일탈 행동으로 맥없이 옮겨붙는 건 여러모로 사회적 위험신호로 읽힌다. 개인의 잘못과 그 뒤편에 가려진 시스템의 한계를 냉정하게 가려낼 이성을 마비시키고 기회를 빼앗아가는 까닭이다. 평소 중요한 여러 사회 의제엔 여전히 무관심하다가도, 특정한 사안에만 마치 ‘악마 만들기’식으로 분노를 폭발적으로 ‘방출’하는 행태야말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이 가장 좋아하는 패턴이자 ‘온순한’ 사회의 맨얼굴일지 모른다. 불행히도, 우리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건 숨길 수 없나보다. 우리 시대의 악이란 평범한 듯도, 평범하지 않은 듯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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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에 실린 역사 연재물 ‘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72~74쪽)은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2차 세계대전 뒤 진행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제시했던, 유명한 ‘악의 평범성’ 테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학 분야의 최근 연구는 아렌트가 주장했듯이 아이히만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대한 기계의 한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뼛속 깊이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반유대주의자이며 능동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음을 보여준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당대의 지성 아렌트가, 1906년생 동갑내기인 아이히만의 법정 ‘연기’에 한마디로 속았다는 얘기다. 현 정부의 권력 상층부를 꿰찬 핵심 인사들이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일깨우려는 데 필자의 숨은 뜻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악의 평범성’ 테제가 이름 없는 수많은 대중이 별다른 저항이나 의문조차 없이 자신을 나치 정권의 거대한 범죄행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비밀은 무엇인지를 파헤치려는 비판적 성찰의 산물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극단주의적 일부 광신도가 아니라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언제든 국가나 체제가 교묘하게 가하는 폭력에 순응하는, 온순한 ‘범죄수행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국가폭력과 체제폭력에 맞서 항상 비판적 이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소중한 까닭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통치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집단을 향해 물리적 폭력과 극단적 혐오를 뱉어내는 퇴행적 흐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잘못이나 범죄행위를 저지른 개인이나 일부 집단을 상대로 ‘과도한’ 저주나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분노를 쏟아내곤 하는 분위기에 우리 사회가 맥없이 휩쓸려가는 현실 또한 한 번쯤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4살 아이를 폭행하는 끔찍한 장면이 공개돼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해당 교사는 어떠한 변명도 허락되지 않는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엔 너무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다만 그 정당한 분노의 불씨가 해당 인물의 개인정보를 경쟁적으로 파헤친다거나 하는 식의 일탈 행동으로 맥없이 옮겨붙는 건 여러모로 사회적 위험신호로 읽힌다. 개인의 잘못과 그 뒤편에 가려진 시스템의 한계를 냉정하게 가려낼 이성을 마비시키고 기회를 빼앗아가는 까닭이다. 평소 중요한 여러 사회 의제엔 여전히 무관심하다가도, 특정한 사안에만 마치 ‘악마 만들기’식으로 분노를 폭발적으로 ‘방출’하는 행태야말로,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이 가장 좋아하는 패턴이자 ‘온순한’ 사회의 맨얼굴일지 모른다. 불행히도, 우리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건 숨길 수 없나보다. 우리 시대의 악이란 평범한 듯도, 평범하지 않은 듯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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