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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혁을 윤석열 정부 뒤로 미뤄놔도 될까요?

등록 2024-01-06 08:35 수정 2024-01-12 00:16
한겨레21 제1495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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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5호 표지이야기 ‘300석 정당하게 나누는 법’은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개혁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의 고민을 다뤘습니다. 국회의원 의석 300석 가운데 47석뿐인 비례대표 의석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요?

사실 선거제도에서 정답이란 없습니다. 한국이나 미국, 영국처럼 지역구와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반면 독일이나 북유럽 나라들처럼 비례대표 선거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선거제도가 다른 만큼 그 정치의 양상도 다릅니다. 지역구와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면 통상 양당제가 나타납니다. 양당제는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반면 시민의 다양한 성향을 반영하는 정당들이 나오긴 어렵습니다.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갈등도 심한 편입니다.

비례대표 선거제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에선 의회에 많은 정당이 등장합니다. 과반수 정당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연합정부(연정)를 통한 ‘합의의 정치’가 발전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연정이 필수지만, 대연정도 자주 합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정치는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그 정도가 심각해졌습니다. 여-야, 입법부-행정부, 어느 쪽도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검찰 수사와 같은 ‘행정’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 야당 다수 의회와의 관계를 잘 풀지 못했습니다. 한 이유는 한국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의 과도한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의회가 양당제여서 협력정치나 연합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적잖은 독자가 2024년 총선의 핵심 가치가 ‘윤석열 정부 심판’이므로 선거제 개혁은 좀 미뤄둬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윤석열 정부가 사라지면 한국 정치가 나아질까요? 예를 들어 촛불혁명 뒤에 한국 정치가 나아졌나요?

어떤 사회의 발전은 제도만으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사람만으로도 안 됩니다. 가장 좋은 대표자를 뽑아야 하고, 가장 나쁜 대표자를 뽑아도 웬만큼 돌아가게 제도를 설계해야 합니다. 모든 측면에서 어두워 보이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밝히려면, 좋은 대통령과 함께 좋은 선거제도, 좋은 정치체제도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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