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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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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절반, 일본이 채운 구정물

등록 2023-03-31 21:09 수정 2023-04-04 10:31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3579.html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국정 운영이 끝내 최악의 굴욕외교 참사를 빚었습니다. 후폭풍도 거셉니다. 2023년 3월16일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한국 기업의 ‘자발적 기부’로 해결한다는 ‘제3자 변제’ 방침을 거듭 확인해주었습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을 검사 출신 대통령이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의 책임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한겨레21> 제1456호 표지이야기 ‘X맨 외교’는 윤석열 정부가 졸속적이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삼각동맹 추진의 배경과 평가를 짚었습니다. 겉표지에 ‘윤석열 외교, 착각의 늪’이라는 부제가 눈에 밟힙니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담이 한-일 관계의 판을 바꿨다”며 “커다란 성공”이라고 자평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 찼다”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한다”고 거들었습니다.

국민의 평가는 싸늘합니다. 3월31일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공개한 최신 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0%에 불과했습니다. ‘부정적’이란 응답은 60%로 갑절이나 많았습니다. 앞서 3월6일 정부가 이른바 ‘셀프 배상’ 해법을 발표한 이후 3주 연속 ‘긍정’ 평가는 줄고 ‘부정’ 평가는 늘었습니다.

물컵의 나머지 절반에 일본이 채운 물도 ‘호응’은커녕 모욕적인 ‘구정물’입니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압박, 2023년 검정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서술 강화, ‘강제동원’ 부인, ‘간토대지진 학살’ 삭제 등은 일부 사례일 뿐입니다. 세간에는 대통령이 외국만 나갔다 오면 문제가 터지고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말이 돕니다. 그게 한번 웃고 넘길 만한 풍자가 아니라 ‘팩트’라는 것은 5년 단임 정부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의 근대사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 ‘착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씁쓸함을 넘어 위기감이 듭니다.

대통령실은 최근 일본,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가안보실장, 의전비서관, 외교비서관 등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참모들을 잇달아 경질했습니다. 대통령실의 의례적 설명과는 다른 불협화음도 들립니다. 윤 대통령이 ‘무식’하고 ‘무능’하다는 일부의 비난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서는 집요한 유능함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통과 유연함,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귀를 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일제강점기 피해 당사자들의 절절한 목소리에,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본 적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국익’은 특정 집단의 사익이나 다른 나라의 국익이 아니라,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의 공익이어야 합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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