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내 최대 현안이던 ‘이준석 리스크’가 가까스로 정리됐다. 법원이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의 효력을 인정하고 이준석 전 대표가 추가 징계를 받으면서, 비대위를 거쳐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의 걸림돌이 사라졌다. 국민의힘은 이제 여당으로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정을 뒷받침하는 새 리더를 대중 앞에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 ‘리스크 관리’에 전전긍긍했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현재 당내 최대 관심사는 2023년 1~2월에 열릴 전당대회다. 여기서 선출될 차기 당대표는 2024년 총선을 치러야 한다. 총선 결과가 향후 정권 재창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 이벤트이기에 당대표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아직 당 상황 자체가 위태위태하다. 빨리 당정 협의를 활성화해 2022년 12월 정기국회에서 국정과제를 실천해야 한다. 안정감 있는 정부와 여당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을 둘러싼 환경은 가시밭길이다. 국회는 여소야대로 불리하고 출범 5개월 된 윤석열 정부의 ‘초보운전’이 이어지면서 현재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도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를 벌이는데, 이는 윤석열 정권의 국면전환 카드로써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표 수사는 결과에 따라 야당발 정계 개편을 불러올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여권의 각종 의혹 제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는 대통령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인물난을 호소한다. 당내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대통령 측근들은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장제원 의원은 일찌감치 2선으로 물러났고, 권성동 의원은 원내대표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내분을 키운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태다.
현재 당대표 출마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김기현·안철수 의원과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등이다. 이들은 아직 몸을 푸는 정도로 페이스북에서 서로를 비판하는 식으로 물고 물리는 견제를 한다. 안철수 의원은 10월11일 “2024년 총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준비가 됐다”며 전당대회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흥행을 위해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도 출마하라고 운을 뗐다. 일찌감치 당권 도전장을 내민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총선 승리라는 지상목표를 공유하는 안철수 의원의 대선 불출마 선언도 기대하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차기 당대표가 대권 도전에 유리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총선에서 자기 사람 심기 등 무리한 공천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승민 전 의원도 10월9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당대표 적합도 7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공유했다. 이어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을 땐 유승민’이라는 <한겨레21> 칼럼을 공유했다. 그러자 나경원 전 의원은 다음날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7주 연속 1위는 나”라고 맞불을 놓았다. 나 전 의원은 2021년 6월 전당대회의 당원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여론조사에서 밀려 이준석 전 대표에게 패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내 지배적인 계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주공산’에 가깝다. 당내 최대 계파는 ‘친윤계’로 통칭되지만, 실제 윤 대통령이 믿는 측근이 많다기보다는 저마다 ‘친윤’임을 부각하고 있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면서 ‘친윤’을 자처하는 김기현·윤상현 의원 등은 대중적 인지도나 당 장악력이 낮다.
반면 당권주자 가운데 인지도가 높은 안철수·유승민·나경원은 ‘비윤’ 또는 ‘반윤’으로 분류된다. 안철수 의원은 스스로 “윤석열 정부의 연대보증인”이라고 칭하며 친윤 색채를 내려 하지만 당내 시각은 다르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한 안 의원이 당대표가 됐을 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갈등 구도가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본인의 포지션에 대해 “반윤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정도일 뿐 특정 계파로 볼 정도는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승민 전 의원은 유일하게 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반윤’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믿을 수도 있고 (이후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는’ 요건을 충족하는 후보가 없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와 주호영 원내대표 체제가 만들어지기까지 이른바 ‘친윤’은 겨우겨우 (이준석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런 국면이 전당대회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각 차출론’도 나온다.
향후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중심으로 재편되는 게 불가피하지만 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거대 야당과 정면대결하는 모양새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정치적 상황이 생길 때마다 윤 대통령은 “정치문제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민생을 돌보기에도 바쁘다”면서 거리 두는 태도로 일관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총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말해주듯이 윤 대통령 또한 당내 기반 구축이 절실하다. 국민의힘은 ‘윤심’이 지배하면서도 사실은 대통령이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중요한 건 윤 대통령의 마음이다. 그동안 두 군데(민주당과 이준석 전 대표)에서 공격받던 대통령은 이제 국정운영을 잘 서포트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당대표를) 생각할 텐데, 의제설정을 잘하고 (야당과의 협상에서) 전략적 마인드를 잘 갖추고 실행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준석 리스크’가 사라진 뒤 드러나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국정 능력 부족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실은 외교 등 주요 현안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비틀거린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에게 약속했던 국정과제도 거대 야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산적해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추락의 본질은 실력 부족이지 이준석과의 내분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여당은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면서도 정부 견제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시점은 총선을 1년여 앞둔 때일 텐데, 그때까지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면 전당대회에서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율 교수는 북한의 안보 위협과 경제위기 고조 등 대외 정치경제 환경의 변화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국기 결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이후 젊은층의 지지를 어떻게 끌어모을지도 관건이다. 20~30대 지지율에서 민주당보다 앞섰던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의 갈등이 심해진 2022년 7~8월부터 민주당에 밀리기 시작했다. 엄경영 소장은 “국민의힘 지지층이던 20~30대와 60대 이상 세대 연합이 거의 붕괴했다.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처럼 고령층 지지자만 남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이준석 리스크가 해소된 게 아니고 오히려 이준석 리스크가 시작될 수 있다”고 평했다.
반면 대표 시절 ‘성별 갈라치기 전략’을 쓴다는 비판을 받은 이준석 전 대표가 20~30대 전체를 대표한다거나 그들을 국민의힘으로 끌어당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준석 때문에 젊은층이 보수화됐다기보다는 젊은층이 보수화됐기 때문에 이준석이 등장한 것이다. 이준석이 젊은층에 소구력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가 없다고 이들이 진보로 돌아가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처신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측면도 크다. 그는 본인의 성접대 무마 의혹으로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후 당의 결정에 소송전으로 맞대응했다. 또 윤 대통령과 측근을 ‘양두구육’ ‘신군부’ 등으로 격하게 비난하면서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징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정치력 부족을 드러냈고 당심도 잃었다.
다만 30대 당대표를 탄생시킨 2021년 전당대회만큼은 성공모델이라는 점에 국민의힘 내 이견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이준석 후보의 당선은 국민의힘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강을 건너 중도 확장으로 이어졌고, 그 흐름에서 박근혜 수사를 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영입할 수 있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다음 전당대회가 기본적으로 ‘윤심’ 선거가 되겠지만 당대표의 색깔이 당의 ‘리빌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 (극우 성향인) 황교안 스타일의 대표라면 다음 총선은 어려울 수 있고 더 중도지향적이라면 승산이 있다는 기대가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이준석도 문제였지만 ‘이준석 이후’가 더 큰 문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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