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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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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듣지 않고 말할까

문제는 가벼운 입, 민생 현장에서도 참사 현장에서도 공감력 마이너스
등록 2022-08-12 18:23 수정 2022-12-09 07:35
2022년 8월3일 여름휴가 기간 중 관람한 연극의 뒤풀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2022년 8월3일 여름휴가 기간 중 관람한 연극의 뒤풀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기습 폭우에 곳곳이 물에 잠기고 쓸렸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반지하 집에 살던 일가족 4명 중 3명이 숨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현장을 찾은 영상을 유심히 보았다. 무릎 높이도 채 되지 않는 창문을 보니 먹먹함이 밀려왔다. 노모와 발달장애 언니와 사실상 가장이었을 동생, 동생의 10대 딸로 구성된 가족의 면면을 떠올리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대통령은 이들이 왜 변을 당했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동생분도 거동이 불편했어요?” “(밤 10시면) 주무시다 그랬겠구먼.” “왜 대피를 못하셨을까.” 엉뚱한 질문만 했다. 밀려든 물살이 차올라 반지하 집 현관문이 꿈쩍도 안 했을 사정을 도무지 짐작조차 못하는 듯했다. 숨진 이들에게 대통령이 가져야 할 미안함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민으로서 품을 만한 연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지역에 누가 살고 어떤 피해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대신 전날 본인의 퇴근길 풍경을 떠벌렸다. “내가 사는 서초동 아파트는 언덕에 있는데도 1층이 침수될 정도였다.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래쪽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됐더라.”

그걸 알면서도 퇴근하고 밤새 집에서 ‘폰트롤타워’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그 모든 비판을 뒤로하고, 재난의 한복판에서 이렇듯 삶에 대한 ‘무지’와 ‘떠벌림’을 내놓은 대통령의 언행이 놀랍다 못해 고통스럽다. 이쯤 되면 공감력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나라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믿어주자던 ‘간헐적 윤석열 지지자’ 어르신 한 분은 “자기도 부모가 있는데 어찌 혼자 남은 노모 걱정은 한마디도 없이, 그렇게 떠벌떠벌 떠벌릴 수가 있냐”며 혀를 찼다. 대통령이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쇼’를 못해서 그렇지 분명 선의가 있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해오던 한 지인은 “무지든 둔감이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하는 모습을 보니 ‘현타’가 제대로 온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마지막까지 붙들어놓은 마음이 폭우와 함께 쓸려가버린 것 같았다.

대통령은 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떠들까. 국정 운영에서도 현장 방문에서도 혼자 떠들까. 심지어 장관들에게 보고받을 때조차 한 시간이면 55분은 혼자 말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조급함과 인정 욕구 때문일까. 그렇다면 더욱 말을 줄이고 일해야 하지 않나.

참모들도 연일 헛발질이다.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컨트롤타워 기능의 부재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진작부터 있었고,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로 크게 대두됐다. 그러나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대통령이 계신 곳이 곧 상황실”이라며 “(대통령의 대처는) 한 치도 착오가 없었다”고 했다. 용산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는지 등을 차분히 설명해 국민을 안심시키면 될 것을 “야당의 프레임”이고 “무책임한 공격”이라고 도리어 날을 세웠다.

여름휴가 기간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들의 애환을 듣는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면서 공개한 사진 속 대통령은 술병이 어지러운 가운데 혼자 팔을 휘저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흥분한 대통령의 애환을 배우들이 다소곳이 들어‘드리는’ 모습이었다. 누군가 현장 고발용으로 뿌린 사진인 줄 알았는데, 대통령실이 홍보용으로 골라 내놓은 사진이란다. 홍보 기능이 헛발질을 넘어 거꾸로 가는 수준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통령의 ‘다변’은 단지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많은 이에게 자괴감과 괴로움을 준다. 나아가 앞날에 대한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나마 점잖은 이들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몰라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럼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국민의힘 내홍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대통령은 정치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하고 있다.

권력자라면 정의롭지 않더라도 정의로운 척은 해야 한다. 위정자라면 공감하지 못해도 공감하는 척은 해야 한다. 그게 통치의 기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통치하지 않고 군림만 한다. 듣지 않고 말만 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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