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질문 세대정치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공연히 2030세대와 60대 이상의 세대포위를 대선 ‘승리 전략’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세대가 과연 정치사회적 선호의 표출에서 유효한 분석단위가 될 수 있을까.(제1399호)
한국 선거에서 세대는 종종 관심사의 하나였지만 이번 대선만큼 세대 이야기가 범람한 적은 없었다. 청년, 20대, 2030, MZ세대, 이대남, 이대녀, 세대포위론, 세대결합론, 극혐 586, 기성세대 때리기 등 수많은 세대담론이 정치 세계에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 세대 이슈의 중요성은 단지 담론의 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대는 이제 사람들을 결집하고 갈라치는 정치적 기획과 전략의 중심에 놓여 있다.
지금 정치권의 세대정치 전략은 무엇보다 청년 유권자에 집중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22년 1월2일 당 청년선거대책위 미래당사 개관식에서 “기성세대는 이미 다 자리를 차지했고 청년세대는 새롭게 진입해야 하는데 새로운 기회는 별로 없다”며 오로지 청년만을 위한 정치를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021년 12월1일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청년세대와 중장년층 세대 사이에는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가 생겼다. 기성세대는 청년 앞에만 서면 다 죄인”이라며 반성문까지 썼다.
기성세대가 기득권층, 부자, 죄인이라는 세대론은 전혀 한국 사회 불평등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인층의 비정규직 비율이 70%나 되고 자살률이 세계 1위다. 50대의 70%가 서비스판매직과 생산직, 단순노무자다. 이들이 들으면 어이없을 얘기다. 정치권이 이렇게 사회 현실을 왜곡하면서 젊은 유권자에게 공들이는 이유는 뭘까? 인구 고령화로 유권자 인구 구성에서 20~30대는 과거보다 훨씬 소수다. 하지만 지금 청년세대는 세 가지 면에서 캐스팅보터(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투표자)로서 힘을 극대화하고 있다.
첫째, 이들은 정치적으로 적극적이다. 최근 투표율, 정치적 효능감, 정치적 표현 등 여러 지표에서 그렇다. 둘째, 누굴 찍을지 불확실하다. 정당 일체감과 충성도가 낮다. 셋째, 변동성이 크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표심이 확확 바뀌니까 권력자들이 안 건드리려고 조심한다. 말하자면 이러나저러나 민주당을 찍을 것 같은 40대, 어쨌든 정권교체를 위해 국민의힘을 찍을 것 같은 노년층과 달리 2030세대 유권자는 정치집단들이 권력을 잡으려면 잘 모셔야 하는 상대인 것이다.
이렇게 정치인들이 이해타산에 따라 청년 사랑을 외치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당은 집권이 목표인데 표를 구하는 게 뭐가 나쁜가? 그런데 문제는 세대 이슈의 정치도구화가 우리 사회의 계층 격차, 노동현실, 외교전략 등 중대한 의제를 다 밀어낸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년, 중년, 노년 각 세대 현실의 올바른 이해와 합리적 정책 대응을 불가능하게 한다. 세대론이 세대 이해를 망치는 아이러니다.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현실정치에서 세대를 단위로 한 전략게임이 불가피한 것일까? 만약 유권자의 표심이 세대를 축으로 갈라진다면 정치권도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지금 한국 정치 상황은 2030 유권자 다수가 특정한 정치성향을 분명히 해서 정치권이 그걸 반영하려고 경쟁하는 게 아니다. 이들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각자 가진 당근을 다 던져보는 것이다. 청년층이 하나의 정치세대를 이루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유동하는 청년들을 각기 자기편 정치세대로 만들려고 작업하는 것이다.
분명하지도 일관되지도 않은 세대균열지금 만연한 오해 중 하나는, 한국에서 언제나 청년은 진보이고 노인은 보수였는데 최근 2030 유권자의 유동성이 초유의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정치 균열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민주화 이전에는 오랫동안 ‘여촌야도’가 강했다. 즉 독재정권의 여당은 촌에, 반독재 야당은 도시에 지지 기반이 많았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이 새로운 균열의 축으로 부상했다. 이때 지역이란 거주지역이 아니라 출신지역을 뜻한다. 지역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이 시기 한국에선 정치권이 이를 무한증폭하고 도구화했다.
한국 정치에서 세대균열이 가시화한 중요한 해는 2002년이다. 그해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기적처럼 승리했는데 여기서 젊은 유권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지역균열이 지금까지 남아 있듯이, 2000년대에 시작된 세대균열도 이후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2012년, 2017년 대선에선 세대균열이 2002년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2017년엔 30대, 40대, 20대 순서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문재인-심상정 지지율을 합치면 20~40대에 모두 60% 내외의 진보 성향 세대블록이 존재했다.
21세기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선명하고 지속적인 세대균열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이후 이른바 ‘이대남’이 주축이 되어 20대 보수화 현상이 일어난 것은 초유의 사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역사적인 시야를 갖고 보면 한국 유권자의 세대균열은 전혀 분명하지도, 일관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세대균열의 원년이라고 할 만한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는 청년층한테만 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노년층에서도 상당한 표를 받았다. ‘노인=보수’라는 공식이 생긴 것은 참여정부 후반기부터다. 또한 ‘586세대’라고 불리는 1960년대생 유권자는 청년기 이래 대선에서 세 번은 민주당에 더 많이 투표했고, 세 번은 보수정당에 더 많이 투표했다. 특정한 출생세대가 계속 진보 또는 보수 성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세대균열 자체의 영향력 역시 똑같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선 세대·이념·가치가 상당히 연결돼 작용했다면, 불과 5년 뒤인 2007년 대선은 그와 달랐다. 노무현 정부 때 실업, 양극화, 집값 폭등 같은 여러 문제로 정부 지지율이 폭락한 가운데 치러진 이 선거에서 유권자는 노무현 정부 심판, 이명박 후보의 경제 역량에 대한 기대, 부동산 이해관계에 따라 표심이 갈라졌다. 탈진보-비보수 성향의 많은 젊은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문재인 정부 후반기의 정치 상황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세대균열이 동요하는 국면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노년층이 강경 보수로 남은 가운데, 40~50대 중엔 현 정권에 실망한 유권자가 대거 있고, 20~30대는 지지 후보가 없는 사람이 가장 많다. 청년층의 젠더균열이 주목할 만하지만, 과거에 청년층이 지역·주거·계층으로 갈라졌던 경험을 생각한다면 하나의 유권자 세대가 다른 축으로 갈라지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다.
이처럼 ‘세대’는 언제나 그 사회의 심층 균열로 갈라졌다. 더구나 그 균열 축은 하나가 아니라 다차원적이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이 인구집단들은 학력·소득·일자리·주거·자산·지역·가치 등에서 불평등과 차이, 갈등 관계에 있다. 다중 격차의 현실에서 다양한 갈등의 선이 복잡하게 지나가는 교차균열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 중 어떤 균열이 전면에 등장해서 동지와 적을 가르고 결집하는 축이 되느냐는, 객관적 사회구조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행위자의 능동적인 정체성 정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대정치의 역동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지금 예를 들어 ‘청년’ ‘20대’ ‘이대남’ ‘2030세대’를 고정된 실체로 규정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현명한 접근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청년의 다수, 20대의 주류, 이대남 정체성의 중핵을 특정한 방향으로 구성하려 경쟁하는 힘들의 판세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각 세대의 큰 그림은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 속도는 때론 매우 빠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금 20대 남성은 이미 2017년 대선 때도 20대 여성과 다소 다르긴 했지만 그 차이가 크진 않았고, 심지어 2020년 총선 때만 해도 많은 전문가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정도로 성별 차이는 주변적 이슈였다. 그러나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다수가 투표장에 가지 않았고, 투표장에 간 20대 남성의 보수적 투표가 두드러지면서 20대 남성을 ‘이대남’으로, 즉 ‘반좌파, 반페미, 혐중 이대남’으로 결집하려는 어마어마한 힘이 분출했다.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은 그런 큰 변화의 흐름을 영리하게 포착해 전략 자산으로 전환했다.
이번 대선 이후에도 따라다닐 질문세대담론은 객관적 현실을 언어로 외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조직하는 정치 행위이자 미래를 조각하는 기획이다. 세대정치는 이미 존재하는 정치세대의 수동적 반영이 아니라, 특정 세대의 주류를 자기 방식으로 창조하려는 능동적 전략이다. ‘반페미’ ‘멸공’ ‘혐중’의 이대남이라는 세대 정체성의 정치에 대적할 진보의 정체성 정치는 어떤 담론과 전략을 취할 것인가? 이는 이번 대선 이후에도 계속 우리를 따라다닐 난해한 질문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의 질문 대선 레이스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파국의 도래를 경고하는 공포 동원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위성정당 창당을 정당화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재집권이 독재와 전체주의로 갈 거라고 말한다. 왜 선거 때마다 이런 양상이 반복되는가.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제1402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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