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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정치인, 86세대 뛰어넘어 존재감 뿜어내나

70년대생 정치인의 존재감은 약하나 민생정치·소통·다양성이 강점
등록 2020-12-06 08:00 수정 2020-12-10 01:02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3월26일 새천년민주당 당사에서 386세대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을 지원하는 ‘386세대를 위한 후원회’가 열렸다. 김진수 선임기자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3월26일 새천년민주당 당사에서 386세대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을 지원하는 ‘386세대를 위한 후원회’가 열렸다. 김진수 선임기자

1970년대생의 정치를 이야기하려면 86세대를 함께 거론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70년대생의 작은 존재감은 86세대가 정치권을 과점하는 현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치른 21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253석)에서 50대인 86세대는 전체 당선자의 절반을 훌쩍 넘는 62.1%(157석)나 됐다. 산업화 세대가 50대였던 15대 국회(56.1%·142석) 이래 최대치다(그래프 참조). 50대가 정치인 인생의 절정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86세대의 과점은 도드라지는 셈이다. 86세대는 2000년을 전후해 여야 정치권에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86세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열린우리당을 통해 17대 국회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의 수는 21대 국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21대 총선에서 당선한 50대 지역구 국회의원 10명 중 7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더불어민주당 68.8%, 국민의힘 29.2%).

50대 지역구 의원, 40대의 6배

이에 비해 70년대생인 40대는 11.1%(28명)에 그친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당시 86세대가 포함된 40대 당선자 비중은 각각 31%와 26.8%로, 21대 국회의 40대 비중을 크게 웃돌았다.

연령별 인구 구조와 견줘봐도, 86세대의 과다대표를 알 수 있다. 2020년 11월 기준, 50대 인구는 전체 인구의 17%(860만 명), 40대는 16%(830만 명)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지역구 당선자 수에선 50대가 6배 가까이 많다. 지역구 후보 공천은 지도부와 당의 중심세력 영향력 아래 있다. 이에 따라 지역구 당선자 수치에는 정당 내부 권력관계가 반영돼 있다. 50대가 다수 당선된 21대 총선 결과는 정치권에서 86세대의 힘을 보여준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86세대인 이철희 당시 민주당 의원이 “86세대,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며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다른 86세대의 호응은 없었다.

정치권에서 70년대생의 존재감이 미미한 이유는 과다대표된 86세대 탓이 크다. 86세대 담론을 연구한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86세대는 30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도정치권 내에서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을 축적해왔다. 당내 요직이나 선거 공천 등에서 기득권을 재생산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자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차세대 정치인이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사회학)의 책 <불평등의 세대>에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포스트 386세대는 40대가 되도록 386세대가 장악한 권력 네트워크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뿐 그 중심에 진입해본 적이 없다. 386세대가 40대부터 권력을 공고화하고 재창출하는 기술을 익힐 동안 그 아랫세대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왔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지금 70년대생이 치고 나오지 못하는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그런 측면도 물론 있지만, 민주당의 경우 ‘원팀’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당내 질서에 순치된 사람들만 정치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했다. 사람보다 정치 환경이 문제라는 뜻이다.

불안정 노동·높은 집값 고민에 공감하는 세대

반면 정치 지도자는 누가 키워주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비전과 색깔을 갖고 자생적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가장 중요한 건 시대정신, 곧 시대의 과제에 대한 고민이 아닌가 싶다. 자신만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시대 상황과 맞아떨어지면 지도자 반열로 올라서는 거고, 아니면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86세대도 정치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성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됐고, 4년 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때 열린우리당을 통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86세대의 문제는 진보-보수,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대결이라고 본다. 낡은 86세대는 이제 새로운 포스트 86세대에 의해 교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70년대생 정치인은 86세대에 견줘 어떤 강점이 있을까. 우선 절차적 민주화와 통일, 평화 등을 강조하는 86세대와 달리 민생과 밀접한 복지나 경제 문제, 일상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관심이 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집값이 폭등한 뒤에 내 집 마련을 고민했던 30·40대 생활인과 70년대생 정치인의 접점이 많기 때문이다. 70년대생 정치인에게 민생 문제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해법 모색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표적으로 박용진의 유치원 3법, 김종철의 연금 개혁, 박주민의 사회적참사특별법 등은 생활과 직접 연관된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86세대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영역”이라고 말했다.

개인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소통보다 수평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또한 70년대생 정치인의 강점이다. 개혁·진보 세력을 강하게 지지하는 현재의 30·40대와도 문화적 코드가 맞다. 신진욱 교수는 “포스트 86세대인 70·80년대생 정치인은 같은 세대인 30·40대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그들의 문제를 정치적 해결의 길로 전환시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에서 환경, 기후위기, 성차별, 성소수자 문제로

86세대보다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박명호 교수는 “86세대는 민주화운동을 위해 기여하고 희생했다는 이유로 정의를 독점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며 “86세대의 시대는 민주화가 거의 유일한 주요 가치였지만 이제는 환경, 기후위기, 성차별,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 속에 70년대생 정치인이 좀더 개방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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