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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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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뽑은 사람이 관료 통제해야 한다

영국은 총리부터 차관보까지 120명 모두가 의원, 미국 고위공무원은 정무직…
한국도 “행정부 2급 이상 민간 개방” 주장
등록 2020-05-09 16:33 수정 2020-05-13 10:14
의회민주주의와 의원내각제를 만든 영국에선 내각의 총리와 장차관 120명이 모두 하원과 상원의 의원이다. 영국에선 시민이 뽑은 의원이 행정부 중책인 총리와 장차관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정치인들이 총리와 장차관을 독차지하는 것이 직업 관료를 통제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2016년 6월 영국 하원 회의에서 발언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 연합뉴스

의회민주주의와 의원내각제를 만든 영국에선 내각의 총리와 장차관 120명이 모두 하원과 상원의 의원이다. 영국에선 시민이 뽑은 의원이 행정부 중책인 총리와 장차관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정치인들이 총리와 장차관을 독차지하는 것이 직업 관료를 통제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2016년 6월 영국 하원 회의에서 발언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 연합뉴스

2020년 5월 기준 영국 내각은 총리 1명과 내각 장관 21명, 차관과 차관보 98명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총리와 장관, 차관, 차관보는 100% 평민의회(하원)와 귀족의회(상원)의 의원이다. 영국 같은 의원내각제에선 의회에서 총리와 내각이 나오기 때문에 의원이 아닌 현직 관료 같은 사람은 내각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사람이 내각의 장차관 같은 중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장차관이 되려면 먼저 정치인이 돼야 하고 그다음에 의원이 돼야 한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영국의 내각책임제는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 의원들이 행정부와 관료를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 위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의원내각제에서 장차관을 모두 의원이 맡는 일은 정부가 관료에 지배되지 않게 하는 한 장치다. 강 교수는 “의원들이 행정부 장차관으로 일하면서 현실을 경험하고 실력을 쌓아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고 정당의 전문성도 높인다”고 했다.

영국, 관료에 복종 의무 지우되 책임은 면제

물론 영국도 한국처럼 고위공무원단이 있어서 관료가 장차관은 못 돼도 고위공무원은 될 수 있다. 고위공무원은 정치인으로 이뤄진 내각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데, 이 원칙은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에 강화됐다. 당시 대처 총리의 정책 노선에 따를 수 없었던 많은 고위공무원이 정부를 떠났다.

대처 총리 시절 공무원들은 동의할 수 없는 정책을 집권 내각의 지시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대처 내각은 장차관 등 정치인의 지시가 국가 이익이 아니라, 심지어 정당 이익을 위한 것이라도 공무원은 따를 의무가 있다는 지침을 내놨다. 동시에 정치인의 지시에 따른 공무원의 행위에 대해서는 의회나 시민이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이를 결정하고 지시한 장차관 등 정치인이 진다는 뜻이었다.

또한 영국은 1994년 존 메이저 총리 시절 ‘지속성과 변화’ 보고서에 따라 고위공무원단 구성을 개방형으로 바꿨다. 1996년 메이저 총리는 3계급 650명이던 고위공무원단을 5계급 3500명으로 크게 늘리고, 정년이나 임기를 보장하지 않는 대신 성과 보상을 강화해 기업 등 외부 인재를 영입하려고 했다.(한인섭·김정렬, ‘영국 행정의 본질과 혁신’, 2004)

대통령제이며 엽관제(선거로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인 미국에선 일반적으로 직업 관료가 장차관은 물론이고 실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도 되기 어렵다. 미국의 장차관은 주로 대통령의 선거 참모나 외부 전문가들이 맡는다. 또 실국장급까지 정무직이어서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 해고할 수 있다.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의 실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6천 명 정도 된다. 장관(Secretary), 부장관(Deputy Secretary), 차관(Under Secretary),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실국장(Deputy Assistant Secretary) 등 5개 직급이다. 특히 6천여 명 가운데 1천여 명은 인사청문회 대상이어서 대통령이 들어선 뒤 정무직 고위공무원이 모두 임명되는 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 영국의 장차관과 고위 공무원 구성

한국과 미국, 영국의 장차관과 고위 공무원 구성


독일은 의원 다수가 공무원 출신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미국에선 선출된 정치인이 관료를 통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실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장차관이나 고위공무원을 대규모로 임명함으로써 직업 관료를 통제하고, 의회는 예산편성과 상시적인 청문회를 통해 역시 행정부를 통제한다. 따라서 한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관료 통제가 이뤄진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관료 조직은 거대하고 대통령이나 의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에 상당한 자율성을 누린다”고 설명했다.

한국처럼 관료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나라로 독일을 꼽을 수 있다. 독일 역시 의원내각제여서 국회의원이 총리와 장차관을 맡으며, 정치(의회와 정당)-행정 관계에서 정치 우위가 확실하다. 장차관뿐 아니라 실장급까지 정무직이어서 정권이 교체되면 상당수가 바뀐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독일 연방의회에선 의원의 다수가 공무원 출신이다. 행정부 관료뿐 아니라 판사나 군인, 경찰, 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공무원이 정치에 참여해 정당과 의회, 정부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1998~2002년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 연방 의원의 42.5%, 사회민주당 의원의 39.9%, 자유민주당 의원의 38.6%, 녹색당 의원의 29.2%가 공무원 출신이었다. 그래서 독일을 ‘행정국가’ ‘관료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공무원이 직업 안정성이나 연금 수준에서 기업 노동자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이 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김성수, ‘독일 정당 및 의회의 정책 전문성 확보 메카니즘’, 2010)

이원정부제인 프랑스는 대통령이 중앙정부의 국장급과 임명직 도지사, 교육감, 대사 등 500여 개 고위직 공무원을 정치적 임명직(정무직)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제13조와 ‘국가 공무원 지위에 관한 법률’ 제25조는 “중앙 행정부 국장은 국무회의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고위공무원 1600여 명 중 민간인만 채용은 3.3%

한국에서도 장차관을 국회의원 등 정치인으로 모두 임명하고, 행정부 2급 이상으로 이뤄진 고위공무원단을 집권정당이나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행정부의 고위공무원단 규모는 1600명가량인데, 이 가운데 민간인만 채용하는 경력 개방직은 53개(3.3%)에 그친다. 민간인과 공무원이 경쟁하는 일반 개방직도 124개(7.8%)뿐이다.

한 정무직 공무원은 “지금 민간인이 극소수에 불과한 고위공무원단을 단계적으로 개방해 최소한 절반 이상의 고위공무원을 정당인과 민간인으로 교체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나 집권정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 역시 관료들이 막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준섭 조사관도 “대부분의 민주주의국가에선 직업 관료들의 정년을 보장해주는 대신 고위직으로 가는 길을 제한한다. 관료가 고위직으로 가려면 정년 보장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모두 정당이나 민간에서 충원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다”고 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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