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장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 문제에 천착해왔다. 이를 정치학 용어에선 ‘거래적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시장에겐 비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취약했다. 성공 경험을 앞세워 미래를 말하는 방식 역시 과거 정치인과 닮아 있었다. _편집자</font>
“나의 끝이 어디일지는 나도 모른다.” 시작은 광장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광장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자 급부상했다. 1년 가까이 1~2%이던 지지율이 단숨에 10%대로 뛰어올랐다. 스스로를 ‘시골 거사’ ‘변방의 사또’라 부르던 성남시장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성 정치의 문법은 많이 허물어졌다.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제일 크게 외쳤던 정치인이다. 야당이 탄핵안 발의를 두고 이해타산을 따지던 지난해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번째 기자회견 직후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고 야권은 탄핵 준비해야’라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치권에서 ‘금기어’ 취급을 하던 탄핵 논의의 물꼬를 텄다. 이후 그는 가장 일관되게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주장한 정치인이었다.
이재명 시장을 중심으로 최근 1년여의 정국을 복기하면, 그는 한국 사회를 가장 오래 지배했던 정치인이 붕괴할 때 가장 뜨겁게 일어선 정치인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통령 되려는 이유 ‘성남 행정의 전국화’</font></font>“변방 장수로는 맞는데, 대한민국을 경영할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약간 부족한 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솔직했다. 이재명 시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말했다. 하루이틀 생각한 게 아닌 걸로 들렸고, 자신의 부침이 거기 결박돼 있다는 걸 잘 아는 것으로 들렸다. 문제는 돌파구다. 지지율이 정체된 뒤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가시화된 것은 없다. 그 사이 몇몇 발언과 이슈로 ‘좌충우돌’ 이미지는 좀더 부각됐다.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어떤 언론들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농부가 언제까지 밭을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경선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구도가 빠르게 ‘문재인 vs 안희정’으로 재편되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자, 밑에서 모이는 ‘손가락혁명군’이 부상하는 속도보다 위에서 움직이는 ‘중앙정치의 관성’이 더 큰 부하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대선 주자’ 이재명은 끝내 ‘변방 장수’ 이재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재명 시장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핵심적 이유로 ‘성남 행정의 전국화’를 꼽는다. “성남에서 한 것을 대한민국 표준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대통령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은 경제·복지 정책 전반을 관통한다.
현재 버전의 공약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디치미디어 펴냄)에서 이 시장은 “정부가 성남시처럼 복지정책을 하는 데 얼마가 들지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중략) 5조원 정도다. 정부 예산은 추경까지 더하면 420조원가량 되는데, 10%를 아끼면 42조원이고 7%를 절감하면 약 30조원이다. 5조원은 1% 남짓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성남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출을 효율화해서, 그 차익으로 복지를 실현한다는 계산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하고는 ‘복지 없는 증세’를 했다면 자신이야말로 ‘증세 없는 복지’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font></font>이재명 시장은 ‘증세 없는 복지’를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주 대통령 박근혜의 무능력과 성남시장 이재명의 능력을 대비한다. 얼핏 ‘내가 해봐서 아는데…’처럼 들린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장 후련한 화법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을 효율화하겠다는 약속은 후보자 시절 박근혜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예산 절감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하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예산 편성은 부처별, 지역별로 강력한 원심력이 작동하는 문제다. 기존 사업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도 치열하다. 예산 승인권을 가진 의회를 상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단임제 권력이 사회적 합의와 치밀한 준비 없이 예산 문제를 감당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물론 과거에도 실패했으니 이재명도 실패할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이 시장의 말처럼 성남의 특정한 사례가 반드시 국가 예산 전체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어쨌든 예산은 각각의 쓸모가 분야별, 시기별로 정립돼 있어 한정된 자원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공격적 복지를 확대해가는 ‘마술’은 단기간엔 가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복지 확대에 대해 이 시장은 “전봇대와 공공 조경 사업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전봇대와 조경 사업은 사례일 테고 궁극적으론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축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SOC 사업 축소 등을 통해 30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지시하면 일주일 안에도 만들 수 있는 돈”이라고 단정한다.
아직 그 추계가 구체화되지 않아 표를 의식한 ‘수사’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2017년 기준으로 1년 SOC 예산의 총액은 22조원 규모다. 박근혜 정부조차 SOC 예산을 줄이고 싶어 했지만, 늘 국회가 발목을 잡아왔다. SOC 예산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역구 의원들이 사활을 거는 문제다. 그 행태를 비판하긴 쉽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더욱이 SOC 공약 축소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 시장의 공약과 발언에는 ‘토건국가’ 체제를 개선하겠다는 철학적·구조적 명분은 보이지 않는다. 예산을 줄여본 성남시장으로서의 성공 경험을 앞세울 뿐이다.
물론 추가적인 재원 확보 방식이 제안되긴 했다. 이 시장은 ‘재벌 증세’ ‘초고액 소득자 증세와 조세 감면 축소’ 등으로 약 20조원을 추가 징수한다는 계획이다. 역시 추계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 방안은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 자체를 사실상 “작살내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농후하다.
이 시장은 여러 차례 “재벌 체제를 해체하겠다” “성과연봉제, 열정페이를 작살내겠다” 등의 화끈한 발언을 하며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체 기업 59만여 개 가운데 0.08% 수준인 440여 개 대기업의 법인세를 현재 22%에서 30%로 인상해 연평균 15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고,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초고액 소득자 6천 명에 대해 10억 이상분에 대한 최고 세율을 50%로 올려 2조4천억원을 추가로 마련한다”는 게 이 시장의 계획이다.
진보적 입장을 표명하는 후보의 논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변방에서 속 시원하게 그런 주장을 하는 것과 실제 실천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 시장이 실제 이 방안을 추진한다면 참여정부를 향했던 기득권의 저항을 뛰어넘는 보수세력 전체의 맹공이 예견된다. ‘법인세 인상’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만 검색해봐도 비판적 기사가 수천 건인데, 한국 사회 전체가 재벌 증세 논란에 휩싸일 경우 극단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 시장 역시 “싸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싸움의 적임자라고 한다. 권력을 갖게 되면 싸우겠다고 생각하는 건 이 시장의 의지고 철학이다. 그걸 지지하는 유권자가 이 시장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싸워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예산 추계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당연한 거를 집행하는 건 행정가가 하는 일”이고, 정치가는 “옳은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자신의 선거 슬로건이기도 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정치의 이유이자 꿈”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재명 시장이 기존 예산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성공해 ‘선별적 복지’를 대폭 확대하고,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복지’마저 달성한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벼락처럼 떨어지는 축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행운의 나열을 공약으로 삼는 건 곤란하다. 게다가 설계의 정교함마저 부족한데 이를 ‘나는 할 수 있다’는 말로 메우는 건 표를 매혹하는 선심성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다. 게다가 이 시장은 복지 재원의 확충은 “대통령이 의지와 철학만 가지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례 없는 대전환을 말하며 ‘국민의 사회정치적 연대’를 이미 확정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못미더운 접근법이다. 누군가는 이 시장이 화끈한 얘기를 한다고 환호하지만, 여전히 다른 편에선 자극적인 선동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다. 변방의 성공을 중앙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이 시장의 난제다.
국가 경영 측면에서 이재명 시장의 문제는 또 있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이재명 공약집 에서 외교안보와 관련된 부분은 12장 ‘평화통일’과 14장 ‘한-미 관계’가 전부다. 전체 180쪽 가운데 달랑 19쪽에 그친다. 말하자면 이 시장은 ‘내치 9에 외치 1’의 성분비를 가진 셈이다.
이재명 캠프에서 정리한 ‘핵심 공약’ 개요 역시 마찬가지다. 12개 핵심 공약 가운데 딱 한 가지 ‘자주국방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 경제협력과 동북아 번영 추구’만 외교안보 관련 공약이다. 이마저 아직 구체성은 없는 구호뿐이다. 정치·경제·사회 이슈에선 논쟁적이거나 충분히 논쟁을 주도해볼 만한 의제를 다수 내놓는 데 반해, 외교안보 문제는 취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용이 빈약하다.
이재명 시장은 에서 “평화와 통일은 국민의 생명이자 밥”이라며 남북관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햇볕정책 계승과 평화번영론 지지라는 민주당의 총론을 원론적으로 반복해 말하는 수준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어떤 것이 최선이냐를 기준으로 ‘개성공단 재개, 남북 교류·협력 재개’를 추진하겠다는 그의 주장은 황폐화된 남북관계의 현실과 첨예한 동북아 정세의 민감성에 대한 각론이 전혀 없어 공허하다. 이 공허함을 메우려 했던 것인지 이 시장은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국수주의 관점도 드러낸다.
“통일 한국은 약소국을 벗어나 일본에 버금가는 동북아 5대 강국으로 역사의 문대에 당당히 서게 되고, 한국 국민들은 기차로, 버스로 시베리아와 몽골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닿는 광경을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는 이 시장의 접근에는 북핵 문제, 대북 지원, 6자회담, 한-중 관계, 한-일 관계 등에 대한 정세 인식이 생략돼 있다.
야당 주자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서는 이재명 시장이지만, 외교안보 관련 질문에는 원론적 답을 내놓고 있다. 그 원론은 기존 민주당 입장에 충실한, 진보적 관점의 대답이긴 하지만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빛나는 능동성에 비하면 확실히 내적 균형이 무너진 대답들이다.
더욱이 몇몇 외교안보 관련 발언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컨대, 이 시장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아직 적대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며 “일본이 군사 대국화가 됐을 때 그 첫 번째 진출 대상지가 한반도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많은 언론이 ‘일본은 적대 국가’ ‘군사 진출 첫 대상 한반도’ 등의 제목으로 압축 보도해, 그는 여러 차례 해명해야 했다.
진의가 왜곡됐다는 이 시장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이 시장이 일본에 대해서는 최상급의 ‘강대강’ 원칙을 견지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의 아베 신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북한의 김정은과 비교할 수 없는 외교적 대상이란 점을 감안할 때, 국익을 향한 유연성이 왜 일본과 미국 쪽으로는 발휘되지 않는지도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딱 잘라 ‘매국 협정’이라고 규정한 이 시장은 미국과도 ‘자주적 균형 외교’를 통해 “당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발언은 얼핏 미국과의 당당한 외교를 원하는 진보적 시민들의 요구에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 시장은 에서 “군사·경제 분야에서 미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한다”고 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말을 칭찬하며 “국익의 관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외교정책을 ‘총체적 무능 외교’로 규정하는 이 시장은 그 근원을 “70여 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부정부패 세력과 맥을 같이하는 이들”이 “강대국에 의존했고, 강대국의 논리와 이익을 앞세워 국민의 삶을 위협했다”며 외교와 국제관계 전반을 “매국 세력이 주도했다”고도 주장한다.
이 시장이 주장하는 한-미 관계 개선안은 ‘사드 철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 방위분담금 재협상’뿐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총론은 협소한데, 각론조차 부족한 형국이다.
이재명 시장은 자신의 정책을 지속적인 마케팅으로 대중에게 설파하고 정세적 흐름을 선취하며 약점을 돌파해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두드러지는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이고 돌파적 리더십이다. 그래서 본인은 ‘샌더스 반, 노무현 반’이라고 불리길 원하지만, 유시민 같은 이는 ‘트럼프 반, 노무현 반’이라 부르고, 전원책 변호사는 아예 ‘트럼프 반, 두테르테 반’이라고 냉소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버전 업’ 노무현? ‘다운 버전’ 노무현?</font></font>그의 존재감은 2012년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시장과도 닮아 보인다. 물론 이재명 시장은 하시모토 전 시장에 비할 바 없이 정의롭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에서 자수성가해 변호사가 되고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 지명도를 얻은 뒤 시장에 당선됐던 성장 경로는 판박이다.
출발 지점은 정반대였지만 엇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두 정치인은 공교롭게도 대중의 감응도가 높은 ‘기본소득’을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예산을 포함한 공공부문 개혁을 핵심 과제로 앞세우며 기성 정당의 바깥에서 직접 국민과 소통하며 반대자들을 돌파해왔다. 핵심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언행을 한다’는 점도 같다.
이재명 시장은 자신의 성격을 “하고자 하는 일은 끝장을 본다”고 규정한다. 그게 “고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정신이고 그런 의미에서 친노”란 말도 했다. 그가 노무현을 넘어 성공한 이재명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버전 업’이 아닌 ‘다운 버전’에 머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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