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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온다, 반드시

촛불집회
등록 2017-01-03 06:18 수정 2020-05-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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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서 일본인들이 촛불시위를 부러워한다기에 “이런 촛불시위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우리나라 국토 면적이 좁다는 사실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촛불시위의 의미와 성과를 폄하하는 발언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다른 선진국이 아니라 한국이 직접민주주의적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적절한 토양을 갖춘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는 세상이니 말이다.

물론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처럼 촛불시위도 한계는 갖고 있다. ‘나’란 사람이 이름과 외모와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처럼, ‘한계’는 곧 정체성이다. 촛불시위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강한 열망을 인터넷 문법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따랐다. ‘비정상’인 박근혜 정권만 물리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정치 일반을 전부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정치적 냉소주의와 특정 대권 주자를 메시아처럼 바라보는 풍토를 양립 가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의 일부이다. 박근혜 정권을 물리치는 데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대안적 정치의 가능성을 만드는 데는 분명한 한계를 노정한다.

박근혜 정권은 총칼과 탱크로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각제나 이의 요소를 가미한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거다. 내각제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왜 일본은 거의 자민당 1당 독재에 가까운 체제가 되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 시나리오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측면에서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은 ‘룰’ 이전에 ‘노선’부터 바꿔보자는 이야기로 수렴돼야 한다. 2016년의 정치는 가치와 노선을 중요시해야 할 정치가 그야말로 파탄이 났다는 걸 보여줬다. 정치적 논쟁의 대부분은 ‘무엇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누가 더 잘못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4·13 총선과 최근 분당 국면에서 다시 등장한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내가 잘못할 수는 있지만 네가 날 배신하면 안 되지.” 이런 인식 속에 정치는 똥 묻은 개와 또 다른 똥 묻은 개의 싸움일 뿐이다.

촛불집회에 영화 에 등장하는 가공의 도시 ‘안남시’ 깃발을 들고 나온 사람들을 ‘아수리언’이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는 기만적 정치의 전횡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시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압권인 장면은, 그 역시 그다지 정의로워 보이진 않지만 어쨌든 정치를 이겨먹으려 들었던 ‘법’이 처참하게 박살 나는 장면이다. 소시민에게 남은 것은 총알 한 발밖에 없다. 결국 이것은 ‘헬조선 죽창론’의 영화적 표현인 셈인데, 촛불집회 역시 이런 에너지의 일부를 공유했던 걸로 볼 수 있다.

이 정서는 궁극적으로 ‘정치가 실패했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물론 모든 정치는 실패하기 마련인데, 그 와중에 바람직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더 낫게 실패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치와 노선을 주장하는 정치의 유산이 존속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는 일상화돼야 하고 사회는 재조직돼야 한다.

이런 말이 그저 한가한 소리가 된 현실에 절망한다. 2017년에도 절망은 이어질 것인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들 하는데, 영화 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장담하는데, 새벽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하던 하비 던트는 악당 투페이스가 된다. 날 밝을 때가 되면 하늘도 밝아진다는 게 상식이다. 동이 트는 2017년이 되었으면 한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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