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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록 2016-11-08 23:25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이 글이 활자로 나왔을 때는 이미 대통령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 그만큼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남녀, 노소, 지역, 이념을 막론하고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다. ‘레임덕’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치적 권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형식적 지위만 남았을 따름이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국면일수록, 많은 사람의 분노가 응축될수록 방향 잡는 일이 중요해진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지 가려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누군가를 계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권력집단의 ‘막 나가는’ 행태를 헤집는 와중에도 놀랍도록 제정신을 지켰던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다.

그중에서 특히 라는 언론을 꼽고 싶다. 지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낯간지러운 일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는 이번 사안에서 어느 매체보다 많은 ‘단독보도’를 했다. 취재는 집요했을 뿐 아니라 날카로웠다. TV조선이 처음에, JTBC가 나중에 중요한 구실을 했지만 는 가라앉을 뻔한 이슈를 홀로 끌어오다시피 한 매체로서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일관되게 유지한 ‘윤리적 태도’다. 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면서도 사생활에 해당하는 부분, 그러니까 개인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같이 ‘헐렁한 독자’에게도 그 의식적 노력이 보였을 정도다. 다른 매체에서 호스트바니, 무당이니, 정유라씨의 아이를 가지고 갖가지 ‘썰’을 쏟아낼 때도 는 보도 경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초기부터 취재한 는 그런 유의 정보를 어느 곳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은 ‘트래픽’을 보장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보도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는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이지만 막상 실천하긴 쉽지 않다. 는 이른바 ‘공론’의 영역에서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지’를 명확히 인지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언론이, 공론장이 피폐한 한국 같은 사회에서 이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최씨 일가의 행각이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그 천박성에 경악했다. 그때의 감정은 부정의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에 가까웠다. 대중의 감정이 격발되면 그중 가장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형태에 편승하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최씨 일가의 천박성은 상당수 언론과 정치인의 메인 테마가 됐다.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이재명 성남시장)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많은 여성이 저 표현의 여성혐오성을 문제 삼았다. 남성이 비리를 저지르면 저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긴 하나 저 표현의 문제는 거기만 있는 게 아니다. ‘근본을 알 수 없는’이라는 말 역시 ‘저잣거리 아녀자’만큼이나 문제다. 봉건사회도 아니고, 인간의 ‘근본’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비슷한 맥락에서 ‘못 배운 강남 졸부 아줌마’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배우신 분’도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란 본디 저잣거리의 아무나가 통치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체제다. 이른바 출신성분이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자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귀족정이지 민주정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번 사태에서 진정 분노해야 하는 지점은 최씨 일가의 천박성도, 박근혜의 빈약한 지적 능력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적 관계인에게 부여한 것, 요컨대 ‘권력의 사유화’다. 여기엔 권력 사유화를 방조하거나 외면한 고위 관료 등의 책임도 당연히 포함된다. 우리가 대통령 사퇴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무능하거나 천박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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