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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색깔론

김일성 외삼촌
등록 2016-07-05 06:59 수정 2020-05-02 19: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박용진 의원이 정무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국가보훈처의 ‘불온함’을 고발하고 나섰다. 그는 박승춘 보훈처장을 향해 “김일성의 외삼촌에게 서훈을 한 최초의 보훈처장” “대한민국 세금으로 매달 390만원을 김일성의 외삼촌에게 주는 것”이라 질타했다.

박 의원 발언 이전인 6월27일 관련 보도가 있었다. 진보 성향 독립언론 는 “김일성 외삼촌에 건국훈장… 보훈처 은폐 급급” 제하의 기사에서 “2012년 광복 67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강진석’은 김일성의 큰외삼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훈장은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의 추천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수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그간 국회의 해임촉구 결의안이 세 차례나 나올 정도로 ‘핫한’ 인물이다.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광주항쟁 당시 투입된 공수부대의 금남로 시가행진을 추진하는 등 수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한마디로 박승춘의 국가보훈처는 비판받을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어떤 비판을 해도 정당해지는 면책특권일 수는 없다. 박용진 의원 발언과 보도는 크게 두 지점에서 잘못이다.

첫째, 연좌제적 발상이다. 김일성의 외삼촌 강진석은 장로교 목사로 민족주의 개신교 계열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형무소에서 13년 복역하다 해방 전 1942년에 사망했기에 김일성의 정권 수립과 별 관련이 없다. 강진석이 김일성의 일가붙이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은 잘못됐다 주장하는 것은 봉건시대 연좌제와 다를 바 없다.

둘째, ‘색깔론’적 발상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는 여러 이념 성향을 지닌 활동가들이 때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면서 조국 독립과 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했다. 설령 강진석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다 하더라도, 기여가 명확하다면 건국훈장 서훈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게 당연한 것이다.

박용진 의원이 몸담은 더민주를 상징하는 정치적 영웅이 누구인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들은 정치 인생 내내 ‘빨갱이’ 논란에 시달려왔다. 김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흔한 학생운동 경험도 없이 정계에 입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좌빨’ 낙인이 찍혔다. 본인의 활동도 아닌 장인어른의 빨치산 경력으로 극우 세력이 주도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 유명한 “그럼 제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발언이 그 과정에서 나왔다.

장삼이사도 아는 일을 박용진 의원 정도의 정치인이 모를 리 없다. 아니, 박 의원이라면 요즘 소장파 정치인 중에서도 한국 사회의 ‘빨갱이’ 낙인찍기가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지 누구보다 선연하게 체험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민주당으로 가기 전 민주노동당에서 정당정치를 시작한 이였기 때문이다. 특히 박 의원의 발언은 정적(政敵)을 공격하기 위해 레드 콤플렉스에 의도적으로 편승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민주 지지자 가운데서도 박 의원의 발언과 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한편에선 ‘파렴치한 여당과 막가는 정권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지지자도 제법 보인다. 물론 현실정치 장에서 ‘샌님’처럼 옳은 소리만 할 수는 없다. 때로 여우처럼 영악해지고 뱀처럼 교활해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금도란 게 있는 법이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과 신념을 굳건히 지킬 때 비로소 영악함과 교활함도 빛나는 법이다.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라 조폭이다.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 속에서도 한 가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는 길 역시 그 세계와 닮아야 한다는 것. 혐오를 없애고 싶으면 혐오를 수단으로 삼길 거부해야 하고, 연좌제와 색깔론을 없애고 싶으면 그걸 무기로 쓰는 걸 피해야 한다. 이건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원칙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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