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단한 무기’의 나라별 사용법

이주의 키워드/ 수소폭탄
등록 2016-01-12 21:08 수정 2020-05-03 04:28

머릿속에서나 그려보던 것이 실제로 나타났다. 어릴 적 내 생각에 수소폭탄은 최고 최대 최종의 무기였다. 너무나 위험해서 아무도 실전에 투입할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병기였다. 그걸 북한의 김정은이 만들었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돈이 없어 다들 굶어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한 줄만 알았던 나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꽤 여러 날 동안 북한이 터뜨린 폭탄의 정체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 북한이 이미 수소폭탄을 만들 거라는 예고를 여러 번 했으니 이제 와서 놀랄 것도 없다는 반응도 물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실험했다는 그 폭발물의 정체를 의심했다. 본격적인 수소폭탄 실험이었다고 보기엔 폭발 규모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증폭핵분열탄을 실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 나왔다. 증폭핵분열탄이란 핵폭탄에 1차적 핵융합반응을 일으켜 핵분열의 효율을 높인 무기다. 핵융합과 핵분열의 연쇄적 고리가 형성돼야 하는 수소폭탄으로 가는 일종의 첫걸음이다. 가장 합리적인 가정이지만 그래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증폭핵분열탄 실험을 한 것이라고 쳐도 폭발 규모가 고농축우라늄탄을 사용한 3차 핵실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차 핵실험은 실패한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무슨 실험을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은 건 오로지 김정은의 ‘소형화된 수소탄 시험작 실험 성공 선언’뿐이다.

생각해보면 김정은은 늘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걸 열망해왔다. 대단한 숙청, 대단한 스키장, 대단한 무기…. 새삼스레 재조명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예도 마찬가지다. SLBM은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이동하며 쏠 수 있다는 데서 위력적인 무기로 간주돼왔다. 북한은 자신들이 이걸 만들었고 미사일 발사 시험까지 성공했다고 주장하는데 물론 증거는 없다. ‘합성 티’가 나는 발사 현장 사진과 미국 등의 영상자료에서 도용한 동영상 화면에 일부 컴퓨터그래픽(CG) 합성을 했다고 하는 동영상 자료 정도가 전부다.

이쯤 되면 혹시 ‘뻥’ 아닌가 의심해볼 만도 한데, 워낙 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선 그렇게만 볼 순 없는가보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강행하자마자 보수언론은 이 핵탄두를 SLBM에 장착해 발사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어느 언론은 북한 핵시설 등에 대한 군사적 직접 타격과 자체 핵무장론까지 밀고 있다.

이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마련이다. 군사적 위기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보수층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로 결집할 것이다. 이들 사이에선 혹여라도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퍼주기’로 일관해 북한이 또 한 번 핵실험을 강행하는 여건을 만들어줄 뿐이라는 논리가 횡행할 것이다. 김정은이 실제 만든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국제정치에서도 이런 문제는 똑같이 반복된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기존 방침이 사실상 방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에 동아시아 문제에 어떻게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G2’를 자처하며 미국과 갈등하는 중국은 불량국가(?)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비호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여전히 ‘앞마당’을 포기할 의사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력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동아시아 왕따가 될 뿐인 일본은 사고뭉치의 만행이 벌어지자 ‘옳다구나’ 하고 전면에 나서고 있다. 여기서도 김정은이 정말 무엇을 한 건지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오로지 다 제 갈 길들만 가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물론 잘 만든 핵을 갖고 정권을 지키겠다는 욕심도 있겠지만 교착된 상황이 이렇게 풀리리라는 기대를 가진 것도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결국 수소폭탄이라는 건 어떤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런 걸 ‘맥거핀’이라고 한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