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끝마다 ‘종북’을 달고 사는 분들이셨다. 자기들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종북좌빨’로 몰아가길 서슴지 않던 분들이셨다. 이분들에게 세상의 모든 악이 응집된 도시는 평양이었다. 증오와 혐오의 총량으로 보자면 옥류관 냉면사리 한 가닥도 입에 대지 않으실 것만 같았다. 그랬던 분들이 맙소사, 북한을 따라하자고 한다. 그것도 교과서를 말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현행 검정 체제에서 국정교과서 체제로 바꾸려는 정권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정권과 여당에서 내세운 논리는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 혼란이 없단 것이었다. 시민사회, 역사학계, 교육현장 교사들 대부분이 즉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해치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내용이 좌지우지되어 되레 더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 와중에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제도 개선을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즉, 정권 차원에서 작정하고 설계한 뒤 밀어붙였단 얘기다. 속내는 뻔하다. 특정 정치세력의 역사관을 다음 세대에 독점적으로 주입하려는 시도다.
기성세대의 상당수는 한국사가 아닌 ‘국사’를 배우며 자랐다. 그것은 국가가 인준한 유일한 역사이자, 반박이나 논쟁이 용납되지 않는 철벽의 도그마였다. 아무리 중대한 역사적 사건일지라도 권력에 의해 ‘불온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완전히 은폐되거나 철저히 윤색됐다. 5·16 군사쿠데타 혁명공약의 여섯 번째 항목(민간 권력이양 약속)을 완전히 날조해 집어넣은 것은 유명한 사례다. 절대다수의 민주주의 국가가 국정 역사교과서 제도를 폐기했거나 처음부터 검정제도인 것엔 명확하고 절박한 이유가 있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또 얼마나 권력에 악용당하기 쉬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이지만 국정교과서 제도를 여전히 시행하는 나라도 없지는 않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 북한이다. 방지원 신라대 교수의 논문 ‘외국의 역사교과서 발행 제도에 비추어본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전환 시도의 문제점’을 보면 북한, 방글라데시, 몇몇 이슬람 국가들은 아직 국정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다시 국정 역사교과서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 방식으로 가자고 주장하는 셈이다. 질문 하나가 퍼뜩 떠오른다. ‘이것은 왜 종북이 아니란 말인가?’
남한 사회에선 ‘종북’이라는 단어로 모든 판단이 중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종북이 전부 나쁜가. 북한 사회에 정말로 단 하나의 ‘좋은 것’도 있을 수 없는가. 실용적 사고를 체화한 사람이라면, 아흔아홉 가지가 나쁠 수 있지만 한 가지 정도 남한 사회가 따라 배울 만한 점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판되는 병맥주. 한국 맥주가 “짐승의 오줌맛”이라고 일부 외국인에게 조롱당하던 시절, 북한의 대동강맥주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한국 맥주업계 분들은 화내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과거 이야기다. 2015년 국산 맥주의 퀄리티는 대동강맥주에 버금가거나 넘어섰다고 생각한다(역시 당신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했던 거다!).
북한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좋은 맥주가, 아니 제도가 있는데 북한이 한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우리만 손해다. 문제는 배울 필요도 없고 배워서도 안 되는 걸 자꾸 배우려고 나선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그 자체로 반민주적일 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는 나쁜 제도다. 종북 중에서도 ‘나쁜 종북’인 것이다. 남북한이 형제의 나라라는 걸 굳이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세습문화라든가 국정교과서 같은 후진성을 닮아가는 방식으로 세계에 과시할 필요는 없다. 나쁜 종북은 그만둬야 한다. 대신 프랑스나 독일처럼 민주사회 시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소양을 가르치는 시민교육 교과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사회갈등만 일으키지만 시민교육 교과서는 사회통합의 큰 힘이 될 수 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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